[지지대] 자살 예방의 날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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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살아있을 적,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시 ‘내가 쓸 자서전에는’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바뀌지 않는 세상을 조롱하는 시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 교수는 지난 9월5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채 발견됐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37.5명.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인의 숫자다. 지난해에만 1만3천513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10~30대 사망원인, 40~50대 사망자 수, 65세 이상 노인의 사망원인 1위가 모두 자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자살률을 비교해 봐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6.5명으로 2위 일본(18.7명)보다 1.4배 높고 OECD 평균 12명보다 2배 이상 높다. 한국은 15년째 OECD 국가 자살률 1위로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자살을 방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유독 자살률이 높은 원인으로 성공지상주의와 과도한 경쟁, 과중한 업무와 급격한 사회변화 스트레스, 청년실업률 증가, 준비 없는 중장년층 퇴직, 가족 해체, 유명 연예인 모방자살 등이 꼽힌다. 사회가 생애에 걸쳐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부추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상당히 미흡하다. 일례로 올해 복지부에 편성된 자살 예방예산은 99억원이다. 자살률 2위를 기록한 일본(7천508억원)의 1.3%다.

 

매년 9월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에서 한해 80만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자살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3년 ‘자살예방의 날’을 정해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예산 확대와 함께 적극적ㆍ체계적으로 자살 예방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 ‘자살하려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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