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사는 한 지인은 집 현관 안쪽에 늘 배낭을 꾸려 놓고 산다. 가로 50㎝, 세로 30㎝ 크기의 ‘생존배낭’이다. 배낭 안에는 생수병과 구급약, 손전등, 헬멧, 비상식량, 여권 등이 들어있다. 이 배낭은 1년여간 그 자리에 있다.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상당수 경주 시민들이 집집마다 배낭을 꾸려놓고 산다고 한다. 지난해 9월12일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경주를 덮쳤고, 이후 크고 작은 여진이 600회 넘게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인 강유미씨가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생존배낭이 화제다. 강씨는 지난달 29일 ‘전쟁가방 샀어요!’라는 제목의 영상물에 자신이 구입한 방독면과 전투식량, 구급용품 등을 이용해 비상시 사용할 생존배낭을 만드는 장면을 올렸다. 직접 방독면을 쓰고 전투식량을 먹어보며 생생한 느낌을 전했다. 그의 영상은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찾아보는 누리꾼이 늘면서 11일 오전 현재 조회 수 46만건을 넘었다.
1년 전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반짝 늘어났던 생존배낭이 최근 북핵 위기 고조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도발 위험이 예사롭지 않자 주변에 지하대피소 위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고, 비상시 대응 요령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늘었다. 과거의 사재기 같은 혼란 대신 각자의 일상에서 정보를 확인하며 준비하는 분위기다. 생존배낭 챙기는 방법이나 유사시 대처요령 등이 정리된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유튜브에도 생존배낭 준비를 소재로 한 영상이 4천700여 개에 이른다.
인터넷 쇼핑몰엔 방독면, 비상식량, 구급함,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등 재난 대비용 물품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이 같은 물품을 세트로 한 ‘전쟁 대비 생존배낭’을 판매하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지난주 초 휴대용 라디오 판매가 전주 대비 40% 정도 증가했고, 전투식량 판매량도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재해ㆍ재난을 대비해 생존배낭을 준비하는 것은 유용하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생존배낭에 대한 안내가 있다. 행안부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개인당 1개씩 비상용 백(Go Bag)을 준비해야 한다고 권한다. 생존배낭은 기본 72시간(3일) 기준으로 준비하면 좋다. 집에서 나갈 때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연중 언제나 준비해 둬야 한다.
생존가방을 준비하되 제발,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모든 국민의 생각이다. 업체 등에서 괜시리 전쟁 마케팅으로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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