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축구 감독의 자진사퇴-전직 대통령의 탈당거부

조덕제 감독, ‘내가 나가야 팀 산다’
한국당 ‘나가라’-朴측 ‘못 나간다’
축구보다 못한 정치에 국민 창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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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시 예산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기업의 자금력과 경쟁할 수 없다. 키워 놓는 선수마다 팀을 떠난다. 고액 연봉을 찾아 가는 선수를 잡아둘 재간도 없다. 자파가 그렇게 떠났고, 시시도 그렇게 떠났다. 1부 리그 승격이 차라리 기적이었다. 클럽 축구 수준의 팀을 오늘까지 키웠다. 팀이 가진 구조적 한계는 감독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쫓겨날 만큼 잘 못 한 게 없다. 차라리 나를 쫓아내라.’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혼자 구단 사무국을 찾았다. 부천FC에 져 5연패에 빠진 다음 날이었다. 품고 온 사직서를 냈다. 구단이 발칵 뒤집혔다.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마음을 바꾸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하지만, 한 번 굳힌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 되레 이사들을 설득했다. “지금 그만두어야 한다. 5연패에 빠진 지금이 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8월 말,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그렇게 떠났다.

2015년 가을, 수원FC가 기적을 만들었다. 축구 협회장이 소속된 대기업 팀과 승강전을 벌였다. 선수들은 지칠 줄 모르고 뛰었고 1차전을 이겼다. 감동은 부산 원정 경기로 이어졌다. 시민 600명이 버스로 따라갔다. 언론은 그의 축구를 ‘막공’(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라고 썼다. 1부 리그 승격! 그 감동의 중심에 있었던 조 감독이다. 팀이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됐다. 그러자 조 감독이 ‘내가 떠나야 팀이 산다’며 떠났다.

하필 비슷한 시기에, 전혀 비슷하지 않은 사퇴 논란이 등장했다. 한국당 혁신위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떠나달라고 했다. 친박 좌장들도 포함시켰다. 쫓아내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한다. ‘떠나지 않겠다’는 말의 에두른 표현이다. 친박 쪽도 조용하다. 그 속에서 폭발 직전의 분노가 보인다. 점잖음을 생략하고 적어보면 이렇다. ‘우리라도 살도록 떠나라’-‘못 떠나겠으니 맘대로 해라’.

이유가 있을 게다. 서로 다른 대망론이다. 출당론 쪽에 ‘홍준표 대망론’이 있다. 지난 대선은 몸 풀기였다는 그다. 친박이 눈엣가시일 게다. 바른정당과의 합당도 중요 과제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이 합당의 기본 조건이다. 반대쪽에도 대망론은 있다. 이른바 재판 대망론이다. 박 전 대통령의 판결이 가져올 대역전을 기대한다. 전부 무죄면 세상은 뒤집어진다고 확신한다. 부분 무죄로도 상황은 달라질 거라 믿는다.

이런 와중에 흘려진 한 여론조사가 있다. 국민 60%가 박 전 대통령의 탈당을 찬성한다는 통계다. 그러니 탈당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좀 그렇다. 질문을 잘 못 던진 듯하다. ‘한국당의 탈당 논란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 게 옳다. 틀림없이 이런 답변들이 나올 게다. ‘부질없는 싸움이다’ ‘볼썽사납다’ ‘이전투구다’…. 말장난이 아니다. 지금 인터넷 댓글이 그렇게 도배돼 있고, 술자리 대화가 그렇게 오가고 있다.

이쯤에서 생각나는-그러나 많은 국민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 전 대통령, 노무현의 자살이다. 검찰 조사를 받으며 모든 걸 잃었다. 그러자 ‘나는 더 이상 진보의 가치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런데 그가 부활했고 진보도 살아났다. ‘모든 걸 버려야 모든 걸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한 역사다. 그때처럼 부활을 꿈꾸고 있을 한국당이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

축구 감독과 전직 대통령을 비교했다. ‘깜’도 안 됨을 잘 안다. 그런데 자꾸 겹친다. 감독은 ‘책임지겠다’며 물러났다. 구단이 ‘다시 생각하라’며 만류했다. 그런 감독과 구단을 보며 팬들은 행복해졌다. 전 대통령은 ‘나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정당이 ‘책임을 통감하라’며 내쫓으려 한다. 그런 전직 대통령과 정당을 보며 국민은 부끄러워진다. 지금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은 조 감독보다 못하고 수원구단보다 못하다.

정답? 있다. 국민이 다 아는 정답이 있다. 한국당은 ‘나가라’는 압박을 접어야 하고, 전(前) 대통령은 ‘안 나간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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