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지난 8월15일 오전. 수원시 파장동 한 작은 빌라의 반지하 방에선 구순(九旬)인 김혜경 할머니(90)의 한 서린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본 TV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 고(故) 김용관 선생의 이름이 불려서다. 김 할머니는 당시 문 대통령이 거론한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5명 중 한 명으로 아버지가 언급되자 수십년간 쌓인 한이 녹아내린 듯해 펑펑 울었다고 한다. 눈물의 이유는 이랬다. 그렇게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랑한 나라에서 업적을 인정해주지 않은데 대한 서러움이 복받친 데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어려운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이렇듯 본보가 단독 및 기획보도한 고(故) 김용관 선생 가족들 외에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펼치고도 제대로 된 예우를 못 받은 채 국가의 외면에,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던 지난 2015년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광복회 회원 1천115명 대상으로 생활실태를 설문한 결과 독립유공자 가족의 월 개인소득은 200만원 미만이 75.2%에 달했다. 세분해서 보면 100만~200만원(43.0%), 50만~100만(20.9%), 50만원 미만(10.3%)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하층’에 속한다는 인식도 73.7%에 달할 정도였다.
이런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힘든 삶 뒤에는 시작부터 뒤틀린 대한민국의 보훈제도가 있었다. 국내 보훈업무는 1961년 군사원호청 설치가 시작, 해방 이후 17년이 지나서야 보훈업무가 시작됐다. 그마저도 한국전쟁 유공자에 집중돼 실질적인 보훈은 해방 20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후 2년 만인 1947년부터 나치에 맞섰던 유공자 보훈을 착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제와 맞섰던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광복 후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생활고에 시달렸고 2세와 3세까지 그 영향이 미친 것. 가난이 대물림되는 구조 속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가 3대까지 예우하겠다”고 밝힌 만큼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체계적인 국가 차원의 지원책이 나와야만 한다. 이와 함께 고(故) 김용관 선생을 비롯해 여전히 국가 인정을 못 받은 5천575명에 대한 발굴 및 인정, 재조명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을 시작으로 악순환의 고리도 끊어야 할 때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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