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개천용론 대신 수저론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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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그렇게 표현한다. 예전엔 개인이 노력하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른바 ‘계층 이동’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옛날 얘기가 됐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구조다. 소득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세습화돼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부모 잘 만나면 용 난다’는 말로 변했다. ‘개천용론’ 대신 태어날 때 어떤 수저를 물고 나오느냐가 중요해졌다. 금수저냐, 흙수저냐 하는 ‘수저론’이 대세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신청자 소득분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전체 재학생 중 국가장학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학생이 73.1%로 집계됐다. 10명 중 7명이 ‘금수저’라는 것이다. 금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사교육을 많이 받아 소위 일류대에 입학하고, 흙수저로 태어난 학생들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등록금을 조달하고 생활비를 벌고 있다. 교육격차에 의한 학벌은 사회적 성공의 대물림으로도 이어진다.

 

부모의 소득 격차가 학교도, 성공도 좌우하는 사회구조가 되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사회적 배경과 경제력이 성공을 좌우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붕괴되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재정학연구 최근호에 실린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오성재씨와 같은 학부 주병기 교수의 ‘한국의 소득기회불평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3년 사이 계층 이동에 성공한 이들의 숫자가 2배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금수저가 득세하고 개천용이 사라지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실제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다. 최저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10명 중 2001년에는 1∼2명이 기회불평등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2014년에는 4명 가까이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저’(주어진 환경)가 그만큼 주요한 요인이 됐다는 의미다.

 

논문은 “높은 불평등과 양극화로 기회평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악화했고 자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회불평등,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 불안을 초래하게 된다. 양극화 해소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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