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조선시대 으뜸가는 침의로 추앙받는 허임(許任, 1570 ~ 1647년)과 21세기 대한민국의 뛰어난 여외과의사와의 로맨스를 다룬 <명불허전>이다. 한의사 허임이 실존인물이어서 놀랐고, 그가 신의 조화(造化) 속에 현대로 이동해 좌충우돌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하지만 기자가 더 흥미롭게 보는 대목은 현실과 닮은꼴인 한의와 양의계 경쟁과 첨예한 갈등, 그럼에도 두 의학분야가 융합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에피소드들이다. 허임은 각종 현대 의료 장비와 수술에 감탄하고, 외과의사도 침술과 한약재의 도움으로 환자를 구하며 비과학적이라 무시했던 편견을 내려놓는다. 드라마 속 한의사와 양의사는 환자에만 집중한다. 반목 대신 더 나은 치료법을 함께 찾아, 인술(仁術)을 펼친다.
▶지난해 한의사의 진단 의료기기 사용 법안을 놓고 빚어진 한의와 양의 간 갈등이 해소되기도 전에, 또 난리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 외래정액제 개선방안’ 탓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았을 때 진료비가 1만5천원 이하면 1천500원만 청구하는 정액제를 진료비에 따라 정률제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의과에 한해서만 개선안을 적용키로 해 한의계의 반발을 샀다. 한의사들의 단식 농성, 일인 시위가 이어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노인 외래정액제 한·양방 동시 개선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뿌린 갈등의 씨앗은 여전하다.
▶중국은 전통의학을 현대 의학과 접목하며 자국 대표 콘텐츠로 키워냈다. 2010년 중국 침구(鍼灸)는 UN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해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표한 ‘중국 중의학 백서’에 따르면 중의학과 중약이 전 세계 183개국에 전해졌다. 중의사가 노벨생리의학상도 탔다.
프랑스에는 30여 개의 중의학 학교가 설립됐고, 독일에는 보험사의 인정받는 중의학 병원이 있을 정도로 세계화에 성공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얕잡아봤던 중의학을 이제는 부러워하는 신세가 됐다. 중의학과의 경쟁이나 국민의 건강권 확보 등 한의와 양의가 화합해야 할 이유는 많다.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실은 스스로 각성해 상생발전의 길을 찾는 드라마와 달라도 한참 다르니 말이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