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추석연휴 119 전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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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기간 중인 지난 5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저는 소방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 지역 소방서 119 상황실에 근무하는 현직 소방관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여러분… 119는 부른다고 무조건 가야 하는 머슴이 아닙니다”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추석 연휴에 신고된 몇 가지 내용을 공개했다. ‘휴대폰을 산에서 잃어버렸는데 중요한 문서가 저장돼 있으니 찾아달라’ ‘다리가 아프니 집까지 데려다 달라’ ‘김치냉장고 작동이 잘 안되니 와서 봐달라’ 같은 내용이었다. 소방관이 ‘그런 사안으로는 출동하지 못한다’고 하니, 신고자가 ‘세금 꼬박꼬박 내는데 국민이 필요해서 부르면 와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며 호통을 쳤다고도 했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열흘간 이어지면서 119에 접수된 신고 전화가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 소방 본연의 임무인 화제, 구조, 구급출동부터 당직 약국, 병원 안내 및 응급처치 안내까지 다양한 전화가 접수됐다. 이런 ‘당연한 업무’에 대해선 친절하게 응대하고, 필요하면 긴급 출동을 한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는 ‘민폐 전화’도 많았다. ‘술을 많이 마셨으니 집에 데려다 달라’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서 귀가가 늦는데 휴대폰 위치 추적 좀 해달라’ ‘명절 음식을 하다 손을 데었다’ 등 119를 개인 비서처럼, 가전회사 AS기사처럼 대한다.

 

물론 소방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관련 법에 근거해 출동하게 돼있다. 실제 단순 출동으로 관할 소방력이 투입돼 그 관할에 분ㆍ초를 다투는 긴급출동이 생길 경우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인근 소방력이 도착할 때까지 상황실에선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한다.

 

현행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허위 신고’를 하는 사람에겐 1회 100만원, 2회 150만원, 3회 이상은 200만원 등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악의적이거나 거짓 신고 이외에는 처벌할 수 없다. 소방청에 따르면 119 구조대가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가 응급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복귀한 건수가 2010년 8만3천44건에서 2015년 10만9천62건으로 늘었다.

 

국민이 119를 너무 편하게, 때론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112에 신고해야 할 사안도 119로 하는 경우가 있다. 잦은 민원으로 소방관들이 헛걸음을 자주 하다 보면 정작 위급한 순간에 구조대가 투입되지 못한다. 그 위급한 상황이 내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119 이용은 꼭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 소방관들의 간곡한 당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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