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은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한반도에 주둔해 왔으며, 미국은 해외파견 병력 중 한국에 3번째로 많은 2만 8천5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SOFA 협정을 토대로 한국은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내에서 사용되던 군용품들의 외부 반출은 관례처럼 내려오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오산 공군기지(K-55) 정문에 있는 중앙시장만 해도 불법 반출된 미군 군용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그 종류만 해도 의류, 전투화 등 수십 가지에 이를 정도다. 한 달이 넘는 취재 과정에서 해마다 수백 대의 차량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 미군의 주력기종인 전투기 3대가 일반 고물상에 반출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대한민국 군부대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수십 명의 목격자가 증언한 대로 국내 주력 비행기가 원형을 유지한 채 3등분 돼 고물 처리업자에게 넘어간 사실이 발생했다면, 아마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을지 모를 일이다.
국군 군용차량이 국내 번호판을 달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더라도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등으로 난리가 났을 일이다. 취재 과정에서 국방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오히려 그런 일이 실제 발생했는지 다시 한번 취재기자에게 확인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모르쇠식 태도를 보이는 주한미군의 소극적 대처다. 심지어 이를 수사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의 협조요청에도 묵묵부답이다. 무시를 하는 건지, 절차상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는 추후 드러날 일이다.
다만 과거에도 이 같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자 한둘만 징계하거나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도마뱀 꼬리자르기식의 태도로 일관하며, 수십 년간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치외법권 지역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면 우리 사법권이 발동을 해야 할 것이다. 1조 원 가까운 혈세로 충당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생각해서라도, 이번만큼은 제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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