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웰다잉법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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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게 세 가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네 가지다. 누구나 죽고, 혼자 죽고, 죽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빈손으로 죽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에 대해선 요란하게 떠들지만 편안함 죽음, 품위있는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 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선 외면한다.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서워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내겐 먼 미래처럼 들려서 일 수도 있다.

 

물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 사는 방법을 넘어 잘 죽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법까지 만들어졌다. ‘웰다잉법’이다. 암 말기나 회생가능성 없는 환자들이 자기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더 이상 연명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환자가 살 가능성이 없어도 의사의 사명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계속해왔다.

 

보건복지부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웰다잉법)의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3개월간의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후 연명의료(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이다. 시범사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2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존엄사는 영국·네덜란드·대만·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처음 연 것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2009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에서, 본인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땐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2013년에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존엄사 제도화를 권고해 사회적 논의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하는 것이다.

 

물론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논란이 많았던 만큼 점검할 것들도 많다. 무엇보다 상속 목적이나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존엄사가 악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 연명치료 중단이 생명경시로 흐르지 않도록 의료 윤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연명치료를 거부한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의료 인프라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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