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천문이 변괴(變怪)를 보이고, 뭇까마귀가 날아서 모여드니 모두 두려운 일입니다. 지금 두 도성의 역사를 일시에 일으켜 일은 벅차고 힘은 갈리니, 백성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역사도 또한 쉽게 마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태조 3년 8월2일). 간관 전백영(全伯英) 등이 태조 이성계에 올린 상언이다. 무리한 한양 천도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 논리 전개를 위해 ‘하늘의 변고’와 ‘까마귀’를 예로 들었다. ▶“뭇 까마귀가 모여서 울고, 재이(災異)가 여러 번 보였사오니, 마땅히 수성(修省)하여 변(變)을 없애야 하고, 또 피방(避方)하셔야 합니다.”(정종 1년 2월26일). 임금에게 한양을 떠날 것을 권하는 서운관의 상언이다. 좌정승 조준 등 재상들이 협의한 뒤 더하여 아룄다. “송도(松都)는 궁궐과 여러 신하의 제택(第宅)이 모두 완전합니다.” 송경으로의 환도가 그렇게 결정됐다. 한양이 불길하다는 증명에 등장한 것은 이번에도 ‘까마귀’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까마귀라는 단어가 173회 등장한다. 조선 전기에는 대체로 불길한 기운을 나타낼 때 쓰였다. 그러던 의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까마귀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본능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명나라 박물학자 이시진이 저서 ‘본초강목’에 기록한 까마귀의 습성이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 ▶“신의 어미가 경상도 진주(晉州)에 있는데…신의 본직(本職)을 갈아 주시어 돌아가 봉양하여 까마귀가 반포(反哺)하는 것과 같은 구구한 사정을 이루도록 하소서”(중종 7년 2월14일). 진천군 강혼이 어머니 공양을 이유로 사직을 청했다. 임금이 감동하여 답했다. “경의 어미는 70세가 되지 못하였으므로 법에 있어서는 돌아가 봉양할 수 없거니와 가까운 도(道)의 직임을 삼는 것이라면 가하겠다. “중종실록에는 ‘까마귀’가 모두 12번 등장하는데, 6번이 이렇듯 효심을 의미했다. ▶지난해 수원지역 일대 까마귀 떼가 출몰했다. 수천 마리가 논밭은 물론 전깃줄까지 점령했다. 사람마다 감상은 달랐다. 어떤 이는 길조라고 했고, 어떤 이는 흉조라고 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사정이 달랐다. 한가로이 길ㆍ흉을 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밀려드는 ‘까마귀 똥’ 피해 신고에 골머리를 앓았다. 딱히 대책도 낼 수 없는 희한한 민원이다. 그 까마귀 떼가 올해도 올 것 같다고 한다. 수원 공무원들이 벌써 ‘까마귀 똥’ 걱정이다.
김종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