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상생(相生)이란 단어를 자주 목격한다.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덕목인 듯하다.
국어사전에는 상생을 금(金)은 수(水)와, 수는 목(木)과, 목은 화(火)와, 화는 토(土)와, 토는 금과 조화를 이룸을 말한다. 즉,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같이 잘 살아감을 의미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유무상생’이란 구절이 나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다.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다.
근래 들어 대기업이 주도하는 대형매장의 지역상권 침투로 말들이 많다. 자본을 앞세운 문어발식 공략이 골목 상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유통매장으로 맥없이 주저앉은 동네슈퍼가 그 일례다.
이런 현상은 시장 자유경쟁 시대에 파생된 도도한 물결임에 틀림없다. 어쩜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공략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골목상권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머리띠를 둘러매고 길거리에 나서 온몸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올 들어 수원에서 촉발된 가구전문점 리바트, 고양의 이케아 입점 등 갈등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갈등과 마찰은 중재와 타협으로 풀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럴 때마다 나오는 단어가 상생이다. 새로운 상권을 확보하려는 대형매장, 이에 반해 이를 저지하려는 소상공인들은 상생협약을 놓고 끝장 줄다리기를 한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상생협약을 놓고 말이다. 아쉽게도 상생협약의 결론은 돈으로 귀결되고 만다. 노자사상의 결정판인 상생이 세욕의 한복판인 재화로 종착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쩜,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에 당연한지도 모른다. 화폐를 매개로 하는 금력의 시대가 현시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생은 노자사상이 담고 있는 대타협이 돼야 한다. 돈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함이 전제돼야 한다.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이지만, 그래야 흔히들 말하는 ‘그래도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김동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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