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묵은쌀 220만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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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하루 한끼도 안 먹을 때가 종종 있다. 삼시 세끼를 다 챙겨먹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먹는다 해도 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하루 쌀 소비량이 169.6g으로 전년보다 1.6%(2.8g) 줄었다. 

보통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공깃밥 하나 반 정도 먹는다는 얘기다. 1997년에는 한 사람이 한해 102.4㎏의 쌀을 소비했다. 그러던 것이 30년 만인 지난해 61.9㎏으로 반토막 났다. 쌀이 남아돌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올해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20만t 줄어든 399만5천t으로 예측됐다. 연간 생산량이 400만t 이하로 떨어진 것은 저온피해가 극심했던 1980년(355만t) 이후 37년 만이다. 쌀 생산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재배면적 감소다. 지난해 77만8천700㏊였던 벼 재배면적은 올해 75만4천700㏊로 3.1% 줄었다. 봄 가뭄과 늦장마 등 고르지 못한 기후도 벼가 영그는 것을 방해했다.

 

과거 같으면 식량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겠지만, 정부는 여전히 쌀 재고를 걱정한다. 생산이 줄었는데도 남아도는 쌀을 주체하지 못해 고민이다. 지난 8월 기준 정부의 양곡 재고는 206만t이다. 여기에 민간 보유량(14만3천t)을 합하면 국내 쌀 재고량은 220만3천t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공공비축용 35만t과 시장격리용 37만t 등 72만t의 쌀을 추가로 사들이기로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의무 수입해야 하는 쌀 40만8천700t도 떠안아야 한다. 지금보다 재고 부담이 112만t 더 늘게 된다.

 

쌀 재고가 쌓일수록 정부의 관리부담은 커진다. 전국에 4천500여 개의 양곡창고가 있는데, 쌀의 변질을 막기 위해 15도 이하의 온도와 11∼12%의 곡물 수분을 유지하게 된다. 엄청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쌀 1만t을 보관하는 데 한해 7억4천만원이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양곡 보관비로 쓴 돈만 1천669억원이다.

 

남는 쌀은 고스란히 재고가 된다. 군납미, 가공용 쌀 등으로 유통되거나 복지용(정가의 10%가격)으로 판매되지만 일부에 그친다. 남아도는 쌀을 처분하기 위해 새로운 소비처 발굴이 절실하다. 정부는 묵은 쌀과 수입쌀을 가공·주정용으로 할인공급해 재고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식량원조협약(FAC) 가입 절차를 마무리해 한해 5만t을 해외에 원조하는 방식으로 재고를 털 계획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쌀에 편중된 농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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