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대변을 콩알만큼 채취해 조그마한 비닐봉투에 담아 학교에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후쯤 선생님은 회충, 편충 등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나눠줬다. 구충제 먹는 아이 명단에 이름이 끼어있을까 조마조마했다. 이름이 불린 아이들은 창피해 하며 약을 받았다.
1970년대만 해도 기생충 감염은 흔한 일이었다. 1971년 한국인의 기생충 감염률은 84.3%였다. 간편한 대변검사법이 도입되고 각종 구충제가 보급되면서 감염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2012년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에서는 2.6%로 낮아졌다.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4만1천9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는 장내 기생충 양성률이 6.6%로 조사됐다.
1960, 1970년대 회충이 흔했던 것은 인분을 퇴비로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회충 알이 있는 대변을 거름으로 밭에 뿌리면 땅에 남아있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퍼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후 인분 퇴비를 쓰지 않고 땅도 대부분 포장을 하면서 회충 같은 토양 매개성 기생충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기생충은 간흡충이다. 올해 11월 현재 신고된 기생충 감염 건수는 회충 1건, 편충 65건, 요충 120건, 간흡충 841건, 폐흡충 2건, 장흡충 205건 등 1천200건이 넘는다. 전체의 70%가 간흡충 감염이다. 간흡충은 간디스토마로 알려진 기생충으로 민물고기가 매개체다. 간흡충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원인 생물체로 담석, 담도염, 담관암의 원인이 된다.
얼마 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의 몸에서 최장 27㎝에 달하는 기생충 수십 마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는 북한 병사에 대한 2차 수술 뒤 “외과 의사 경력 2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큰 기생충을 장관(腸管·소장과 대장)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귀순 병사의 키는 170㎝, 몸무게는 60㎏으로 측정됐는데, 남한 고3 남학생의 평균치(173.5㎝, 70㎏)에 못 미친다. 복강의 음식물도 대부분 옥수수였다.
북한의 지속되는 식량난 때문에 북한주민 영양상태가 나빠지면서 체격이 왜소해졌다는 보도가 실제로 확인됐다. 출신 성분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JSA 근무 군인조차 옥수수로 연명하고, 몸에 기생충이 우글거린다면 다른 부대의 식량 사정 및 건강 상태는 더 열악할 것이다.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가 지속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몸은 쪼그라들고,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남북 관계가 회복돼 기생충 약이라도 보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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