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 외교의 최전선
박찬익 선생은 1884년 1월 2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기까지 서당에서 유학을 공부한 선생은 20세가 되던 1904년, 서울의 농상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인 교사와의 마찰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보안회’에 참여하여 일제의 황무지개척 요구안에 반대투쟁을 하며 민족문제를 자각하게 되었고 신민회에도 가입하여 서북지역에서 계몽교육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911년 2월에 만주로 망명한 선생은 종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대종교를 받아들이고 대종교 포교와 독립운동에 온 힘을 다하였다. 1940년 광복군 창설 과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40년 10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법무부장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임시정부의 좌우합작에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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