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여배우의 고독

하라 세쓰코(原節子)는 일본의 국민 배우다. 1935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일본ㆍ독일의 최초 합작 영화 ‘사무라이의 딸’에 출연했다. 일본 패전 이후에는 ‘우리 청춘 후회 없다’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운명에 맞서는 당찬 여성 역할이었다. ‘푸른 산맥’에서는 지적이고 밝은 교사를 연기했다. 미모에 시대정신까지 겸비한 배우였다. 42세 되던 1962년, ‘주신구라(忠臣藏)’를 끝으로 세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53년 만에 일본 언론에 등장했다. 그의 나이 95세 되던 2015년 11월 초다. ‘국민 배우 하라 세쓰코, 사망.’ 사망일은 두 달 전인 그해 9월5일이다. 가나가와현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레타 가르보는 영화 ‘마타하리’로 유명한 세기의 배우다. 1941년 갑작스레 은퇴했다. 그리고 숨지기 전까지 50년간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많이 닮은 두 인생이다. ▶영화 ‘페도라(Fedora)’는 여배우의 은둔 생활이 소재다.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78년에 만들었다. 그레타 가르보를 모델로 삼았다는 게 영화계 정설이다. -주인공 페도라는 은막의 대스타다. 늙어가는 모습을 숨기려 외딴섬에서 생활한다. 60세가 넘어서도 30대 같은 젊음을 유지한다. 영화감독이 그를 복귀시키려 섬을 찾아간다.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주인공은 열차에 몸을 던진다.- 젊음을 지키려는 애착의 허망함으로 영화는 맺는다. ▶하라 세쓰코,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영화 ‘페도라’. 공통점은 여배우와 세월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배우에게 늙어감은 고통일 수 있다. 세월의 뒤로 숨어 영원한 젊음으로 남고 싶어 한다. 여성의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엔 고독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한때의 기억으로 남기 위해 세상과 담을 쌓아야 하는 고통이다. 하물며 그 은둔이 인기 추락과 현실 속 가난 때문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 추락과 가난 속에 쓸쓸히 죽어가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배우 이미지(57ㆍ본명 김정미)씨가 숨졌다. ‘서울의 달’(1994), ‘파랑새는 있다’(1997) 등 수십 편의 드라마ㆍ영화에 출연했다. 젊은 누리꾼들이 사진을 본 뒤 ‘아 이분이군요’라며 알아본다. 이 중견 여배우의 마지막이 안타깝다.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서 숨졌다. 2주일쯤 지나고야 발견됐다. 하라 세쓰코, 그레타 가르보의 고독이 차라리 사치라 여겨진다. 우리나라 배우와 탤런트 10명 가운데 9명이 월수입 60만원 미만의 극빈층이라는 통계가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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