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전은 조선시대 여섯 임금의 어진(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을 봉안한 전각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에 해당되는 훈도방(薰陶坊)에 있었으나 원래는 세조의 장녀 의숙공주의 생가였으며 중종 원년에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거처였다. 1619년(광해군 11년)에 태조와 세조의 어진을 모시며 남별전(南別殿)이라 불렀다가 1690년(숙종 16년)에 영희전(永禧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러한 영희전에 임금들은 매해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 제를 거행했다.
임금의 탄신일에 다례를 거행한 ‘선원전 다례(璿源殿茶禮)’에는 이안(移安)절차, 환안(還安)절차, 고유다례(告由茶禮)절차, 작헌례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고유다례절차는 홀기(笏記)로, 작헌례 절차는 ‘선원전다례 섭행홀기(攝行笏記)’로 의례진행을 기록했다.
화령전은 순조 원년(1801)에 완공하여 정조 어진을 봉안하고 1804년에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을 개정하였는데 이때 화령전 의식은 선원전과 영희전의 예(例)에 따라 마련하였다.
화령전 정기제향은 정조대왕 탄신제향과 납향제로 순조 34년 재위기간에 10회의 친제와 헌종 2회, 철종 3회, 고종 2회로 모두 17회의 친제(親祭)가 이루어진 곳이다.
현재 서울의 영희전이나 선원전은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그러나 수원화성 화령전은 1963년에 사적 제 115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순조 즉위년부터 지금까지 216년 동안 고스란히 지켜지고 있다. 수원화성행궁 관람객은 월 평균 5만 명이고 일일 평균 1천7백명이 들고난다고 한다. 화령전에는 선원전의 예에 따라 삭망은 물론 정조대왕 탄신일에 탄신다례가 정착되어야 마땅하다.
강성금
수원화성예다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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