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한 방송에서 서른 살에 유전성 치매에 걸린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된 적이 있다. 10분마다 기억이 흐려져 직장은 물론 일상생활도 불가능해 집 안의 화장실도 못 찾을 정도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 동네 공원에서 보름 동안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다.
서른살 치매 청년과 같이 20~30대 치매는 유전적 요인이 강하다. 뇌 기능이 손상돼 걸리게 되는 치매는 현재로서는 병의 진전을 늦추는 정도밖에 할 수 없어 젊은 나이부터 신경 써 관리하는 것이 좋다.
치매는 대표적 노인성 질환이지만 노인만 걸리는 병은 아니다. ‘젊은 치매’를 앓는 청·장년층 환자도 늘었다. 의학계에서는 만 65세 미만 치매를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한 ‘초로(初老)기 치매’로 판단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을 찾아 진료받은 치매 환자 42만4천239명 중 1만9천665명(약 4.6%, 남성 8천724명·여성 1만941명)이 초로기 치매 환자였다. 30~50대 환자도 2006년 4천55명에서 지난해 8천521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실제 병원 신경과엔 심한 건망증이 단순 건망증인지 초로기 치매 전조 증상인지 알아보려고 검사를 받는 40~50대가 많아졌다고 한다. 특별한 발병 원인이 생겨난 게 아니라 치매에 대한 전반적 관심이 늘면서 잠재돼 있던 환자들이 병원을 찾고, 이에 따라 초로기 치매 환자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치매 환자 중 약 84%는 노화와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다. 하지만 나이와 큰 상관없이 뇌출혈·뇌졸중 등 뇌 질환 후유증으로 생기는 ‘혈관성 치매’, 머리에 잦은 타박상을 입는 권투 선수처럼 외부의 물리적 충격으로 생기는 ‘외상성 치매’도 있다. 지나친 음주로 뇌세포 손상이 누적되면서 발병하는 ‘알코올성 치매’도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과음으로 필름이 끊기면서 기억을 잃는 블랙아웃 현상이 잦은 경우 알코올성 치매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컴퓨터 등 전자기기에 익숙한 10~30대의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저하되는 ‘디지털 치매’도 있다. 뇌 손상으로 생기는 치매와 달리 일시적 현상으로 전자 기기 의존도를 줄이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치매 질환에 포함되진 않는다.
노인이 아닌 연령대의 치매는 드문 일이다. 하지만 20대라도 건망증이 심하고 치매 가족력, 특히 초로기 치매 환자가 있는 경우엔 조기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알코올이나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