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은 2008년 12월 안산의 한 교회 화장실에서 조두순이 8세 여아를 강간 상해한 사건이다. 당시 피해 아동은 이 사건으로 생식기와 항문, 대장의 80%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고, 조두순은 징역 12년, 정보공개 5년, 전자발찌 착용 7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1심 재판부는 조두순이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 ‘심신미약’을 사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재판부에 “만취를 이유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영이(가명) 사건’의 조두순이 2020년 12월 출소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달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주취감형(酒醉減刑·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형벌을 줄여주는 것) 폐지’ 청원 참여자가 3일 21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가 공식답변키로 한 기준선인 ‘한 달 내 20만명’을 충족시킨 것이다.
청원자는 “주취감형으로 인해 조두순이 15년 형에서 12년 형으로 단축됐다”며 “술을 먹고 범행을 한다고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봐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시 음주 상태를 입증하기 힘들다’, ‘형법 무시 행위가 증가한다’, ‘선진국은 음주 제재가 많이 존재한다’고 했다.
잔혹한 범행 후 흉악범들은 조두순처럼 재판부에 ‘범행 당시 음주’를 주장하고 있다. 2010년 서울의 학교에 침입해 초등학생을 납치한 뒤 성폭행한 김수철은 “나는 맥주를 마시면 성욕을 느낀다. (범행 당시에도) 술에 취해 경황이 없었다. 술이 원수다”라고 진술했다. 2011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을 시도하려다 안되자 살해한 오원춘도 “난 술을 즐기고 범행 날도 술을 먹고 외로움을 느끼다가 멀리서 피해자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숨어 있다가) 일부러 넘어뜨렸다”라고 진술했다.
‘술을 마시고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형을 감해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정서다. 2012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강간, 폭력, 살인 등 취중상태 범죄에 대한 감형 기준을 강화했다. 국회도 2013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개정해 음주로 심신장애 상태였다고 해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감형을 제한하도록 했다.
미국과 영국에선 만취해 저지른 범행은 원칙적으로 감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는 판례상으로도 ‘주취는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다(Drunkness is no excuse for crime)’는 원칙이 있다. 주취감형 폐지 청원에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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