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1만 달러 그 이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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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밤 10시께, 우리 일행을 태운 여객기가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온 우리 일행은 대기 중이던 관광버스에 올랐고, 뜻밖에도 2대의 경찰 싸이카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에 도착하여 여행 첫날밤을 즐겁게 보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는 교통신호, 중앙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경찰 싸이카의 호위를 받으며 예정된 관광코스를 운행하였고, 우리 일행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기분에 작은 희열도 느꼈다. 

그들은 공공의 경찰이라기보다 여행안내원이 고용한 경호원으로 보였고, 일사불란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우리 일행은 잠시 차창 너머에 펼쳐지는 해안선, 호수, 푸른 들녘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취해 보았으나, 눈길을 돌리자 사람이 사는 곳으로 믿어지지 않는 누더기 원두막이 즐비한 빈민촌,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걸인들, 여과 없이 버려지는 생활폐수, 곳곳에 쌓인 쓰레기더미 등 빈곤과 무질서의 한계를 보아야 했다. 

설상가상, 악취가 쏟아지는 해변의 하수구 앞에서 환상적인 해넘이(sun.set) 광경을 즐기라는 현지안내원의 말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럭저럭 4일간의 관광 일정이 끝나가는 마지막 날 12시께, 현지 안내원은 시내의 한 식당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고는 여권 등 물건을 실은 채 관광버스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 일행은 사실상 그 식당에 감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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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사와의 연락에 실패한 일행의 대표들은 해외공관 등에 신고하여 협조요청을 하였으나, 필요하면 숙소를 알아봐 주겠다는 정도의 도움 이상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국 여행사로부터 경비를 지급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관광객을 볼모로 삼은 현지 안내원은 우리 일행으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강취한 후에야, 어딘가에 숨겨 두었던 관광버스와 호위경찰을 보내 우리 일행을 공항으로 안내하는 호의(?)를 베풀었고, 5시간 넘도록 불안에 떨던 우리 일행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백주대낮에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일어난 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그들 중 호위경찰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이었고, 그들 일당은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목적을 이루었고, 우리 일행은 그렇게 당하고 말았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6년에 해외로 나간 우리나라 여행자 수가 연인원 약 2천238만 명에 이른다 하니,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았으리라. 해외여행 경험이 적은 분들에게 권고한다. 신뢰할 수 있는 여행사를 선정하고, 보험과 계약조건을 잘 살피고, 여권은 반드시 몸에 지니고, 지나치게 저렴한 여행비견적에 현혹되지 말고, 여행정보를 잘 활용하시기를. 황당했던 이 사연이 1만 달러 그 이상의 갚진 교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규일 법무사·전 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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