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파사현정(破邪顯正)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원래 삼론종이라는 인도 불교 종파의 근본 교리를 계승하는, 수나라 길장이 지은 ‘삼론현의(三論玄義)’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가 불교계의 울타리를 넘어 이제 사회 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쉽게 풀이하자면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대학 교수들이 올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선정했다. 교수신문은 교수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메일 설문조사 결과 340명(34%)이 올해를 잘 표현할 만한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꼽았다고 밝혔다. 최경봉 원광대 교수(국어국문학)와 최재목 영남대 교수(동양철학)가 나란히 파사현정을 추천했다.

 

최경봉 교수는 “사견과 사도가 정법을 짓누르던 상황에서 시민들이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었고,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재목 교수는 “올 한해 세상을 움직였고 달구었던 ‘적폐청산’이라는 이슈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회지도층, 엘리트집단, 기득권층의 갑질, 그런 독점의 민낯이 드러났고, 국민 모두가 경악했고, 한편으로 속이 후련했다는 최 교수는 “이런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적폐청산이라는 절대정신을 다르게 표현해본 것이 파사현정”이라고 말했다. 최재목 교수는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파사현정은 2012년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정된 바 있다. 그때 어느 신문 1면 제목이 ‘破邪顯正, 2012년 정의를 꿈꾸다’였다. 기사엔 ‘지난 4년간의 정책이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닌, 대통령과 가진 자들의 사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공익을 실현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도록 하는 바람 때문에 파사현정을 선택했다’고 쓰여있다.

편법·꼼수는 가고 정의가 바로 섰으면 하는 마음,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 꼼수와 편법에 길들여진 정치권을 보내고 진정한 정치가 남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파사현정을 선정했던 것이다. MB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박근혜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5년 만에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이 재선정됐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어 다시 출현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여망이 담겨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통해 바른 것들을 드러내 몇 년 뒤 이런 말이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