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으로 무료 급식을 실시하겠다.’ 1992년 대선에서 나온 공약이다. 통일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것이다. 반값 아파트 공급, 고속도로 2층 건설 등도 그의 주장이다. 공약마다 재벌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 중에도 무료급식이 압권이다. 도시락을 챙겨 다니던 시절이다. 김영삼ㆍ김대중 후보는 기껏해야 ‘전면 급식 실시’를 내걸었다. 당시 사회 현실을 두세 단계쯤 뛰어넘는 공약으로 여겨졌다. ‘황당 공약’ ‘돈 질 공약’ 취급을 당했다. ▶2009년, 무료 급식이 다시 등장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다. 진보 진영 김상곤 후보가 내놨다. 무상급식이라고 명패는 바꿨지만 내용은 같다. 그런데 반응이 17년 전과 달라졌다. 아무도 ‘황당’하다고 욕하지 않았다. ‘돈 질’이라는 비웃음도 없었다. 유권자 학부모들이 엄청나게 지지했다. 이듬해 지방 선거는 차라리 ‘무상급식 선거’였다. 지금 대한민국에 무상급식을 시행하지 않는 학교는 없다. 25년 전 공약(空約)이 행정(行政)으로 바뀐 것이다. ▶허경영씨도 대통령 후보다. 그런데 기행(奇行)이 많다. 정치인보다는 희극인에 가깝다. 내놓은 공약에도 그렇다. 유엔 본부 판문점 유치, 모든 범죄자 재산 비례 벌금형, 전 국민에 생일 케이크 배달…. 덕분에 살벌한 대선판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달리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결과적으로 앞서가는 공약들이라는 평가다. 출산수당 3천만원은 지금의 출산장려금 제도로, 중소기업 입사자 100만원 쿠폰 지원은 지금의 창업인턴제 80만원 지원으로 연결됐다고 해석한다. ▶그런 허경영 공약 중에 이런 게 있다. ‘전국 8개 도를 동서로 4개 도로 통폐합하여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전남과 경남을 합쳐 전경도로, 경북과 전북을 합쳐 경전도로, 충청도와 강원도를 합쳐 충강도로, 경기도와 서울을 합쳐 서울로, 제주도는 그대로 둔다.’ 이른바 ‘지역 혁명 공약’이다. 이와 비슷하게 들리는 요즘 얘기가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초광역권 재편 주장이다. 서울도, 대전도, 대구도, 부산도, 광주도로 나누자고 한다. ▶이 화두를 정치적 아젠다로 계속 밀어붙일 모양이다. 사회는 변하고 가치도 변한다. 비웃음의 대상이던 무료급식이 보편적 복지의 효시가 됐다. 기인(奇人) 허경영의 4개 광역 개편 공약이 남 지사의 5개 초광역권 개편으로 현실화될지 누가 알겠는가. 함부로 단정하거나 격하할 일이 아니다. 다만, 많은 도민이 서운해하는 건 이런 거다. 경기도지사가 왜 ‘서울도’를 주장하나. ‘경기도’라면 좋았을 거고, ‘한양도’라면 좀 나았을 텐데….
김종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