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산가족상봉은 이념보다 우선이다

김창학 정치부장 ch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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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고향은 함경남도 풍산군의 한 집성촌이다. 직업은 포수. 길게는 몇 달씩 금강산, 백두산을 누비며 사냥에 나선다. 그가 잡은 사냥감을 장터에 팔고 마을에 돌아오면 나머지 작은 산짐승을 잡아 동네잔치로 한바탕 왁자지껄한다. 

일제강점기후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낀 그와 친ㆍ인척은 1ㆍ4 후퇴 때 함흥부두에서 철수하는 미군의 배에 겨우 올라 월남한다. 거제도까지 간 그의 일행은 북진하는 국군의 뒤를 따랐지만 휴전으로 발이 묶인다. 당시 월남인 대부분 그렇듯이 ‘곧 통일이 될 것’이라는 바람으로 고양시, 현재의 일산신도시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끝내 밟지 못하고 여든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인도에 사는 다섯 살 사루는 홀어머니의 가계를 돕겠다며 형의 잔일에 따라나선다. 밤일에 기차로 이동하는 일이라 반대하는 형에게 막무가내로 우겨 따라나서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해 결국 기차에서 깜빡 잠든다. 눈을 뜨니 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곳. 기차역에 홀로 남겨진 사루는 몰려드는 불안감에 엄마와 형을 애타게 불러보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수개월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 고아원에 들어간 뒤 호주의 한 가정에 입양된다. 

청년으로 훌쩍 자란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기억을 더듬고 더듬지만 기억나는 것은 형 ‘구뚜’의 이름과 정확하지 않은 동네 이름뿐. 양부모의 격려 끝에 용기를 낸 그는 호주에서 인도까지 7천600㎞의 긴 여정 끝에 어머니를 만난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는 ‘기다리면 언젠간 만난다’는 믿음 하나로 아들을 기다리며 집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실화로 훗날 영화로 제작돼 가족의 소중함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9일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핵 문제로 그간의 경색된 관계가 무색하게 회담장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의 창을 열고 군사 당국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을 큰 성과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를 합의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아직 대화의 시간은 남았다. 이번 설에는 어쩌면 생에 마지막이 될 그분들이 그리운 가족을 만나길 기대한다.

김창학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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