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외로움 전담 장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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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한 작은 마을에서 1세기에 걸쳐 기이한 일들이 이어진다. 라틴 아메리카의 복합적인 인종, 문화, 역사적 전통과 현실 등을 ‘쓸쓸함’이란 색안경을 끼고 담담하게 그려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장편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82년 노벨 문학상도 받는다.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다. 꽤 부담 가는 명품은 더더욱 아니다. 인공 지능이 발달하고 로봇이 현실화되면서 인간은 그만큼의 분량으로 외로워지고 적막해지고 있다. 이미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숱한 철학자들이 우려한 바 있어 새삼스럽지는 않다. 예고된 재앙이다. 현대인들에게 외로움이 필수품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지구촌 곳곳에서 금연이 확산되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의 아이콘이었던 쓸쓸함이라는 사치품도 사라져가고 있다. 턱을 괴고 깊은 상념에 잠긴 형상의 로댕 조각이 외로운 인간의 모델로 되돌아오고 있다. 고독이라는 어휘를 곱씹으면 예전에는 고소한 땅콩 냄새가 났지만, 이제는 그저 단어 그 자체일 뿐, 아무런 느낌도 없다. 

▶영어권 나라에선 고독이나 외로움을 ‘Solitude’나 ‘Loneliness’ 등으로 표현한다. 서양의 문학가들이 이 어휘를 자신의 글에 쓴 사례는 숱하다. 문학가들은 물론, 대중음악가들도 곧잘 노랫말에 고독을 집어넣어 대중을 사로잡는다. 샹송 가수인 조르지 무스타키(Georges Moustaki)의 ‘나의 고독(Ma Solitude)’이 대표적이다. 

▶최근 영국 정부가 외로움과 관련된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직을 신설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장관을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는 장관으로 겸직 임명했다. 크라우치 장관은 앞으로 국가통계국과 함께 쓸쓸함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통계를 취합하고 관련 연구, 정책 및 지원자금 마련 등을 추진한다.

▶이 같은 배경에는 고독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보고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에선 75세 이상 인구의 절반가량이 혼자 살고 있다. 잉글랜드에서만 200만 명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젠 가칭 ‘고독부 장관’ 신설을 검토해야 하는 걸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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