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해 목숨 바친 의병대장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에 임명돼 벼슬길에 올랐으나 1884년 갑신정변 후 물러나 고향에 은거했다. 향리에서 은거하며 학문에만 열중하던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에 투신했다.
선생은 항쟁운동을 하다 1907년 11월 흩어져 있던 각 의진에 통문을 띄워 전국 의진들이 경기도 양주에 모일 것을 호소하고 13도창의대진소를 결성했고 선생은 호서창의대장에 선임됐다.
선생은 청풍 까치성 전투에서 장마비로 인해 화승총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퇴로가 막혀 고전하던 끝에 선생은 복사뼈에 탄환을 맞아 적에게 사로잡혀 1908년 교수형을 선고받고 일생을 마쳤다.
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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