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저격수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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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의 달인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표적을 명중할 수 있는 ‘저격수’ 역사는 1870년대 영국령 인도에서 출발했다. 빠르게 날아다녀 쉽게 맞출 수 없던 도요새를 사격해 명중시킬 만큼 뛰어난 사수를 저격수, 스나이퍼(Sniper)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때 ‘길리 슈트(ghillie suit)’라는 저격수 위장복을 처음으로 입은 영국의 로뱃 정찰대는 최초로 저격수를 부대에 편제, 전선에서 활약토록 했다. 

저격수의 전성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2명의 저격수가 여러 중대를 꼼짝 못하게 발을 묶는가 하면, 저격수 1명이 무려 수백 명의 적군을 사살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주요 기록으로는 핀란드 방위군의 저격수인 시모 하이하가 소련과 핀란드의 분쟁인 겨울전쟁에서 542명의 사살 기록을 세웠고, 최장거리로는 영국 육군의 크레이그 해리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천475m의 저격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런 저격수의 중요성은 베트남전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미군 병사가 적군 1명을 사살하기 위해 20만 발 이상의 총알을 쏴야 했다. 그러나 뛰어난 저격수들이 적 1명을 사살하고자 사용한 탄환은 평균 1.3발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사람들이었던 최측근들이 자신의 주군을 향해 저격수로 변신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초기 혐의를 부인해오다 “대통령이 모두 시켰다”고 진술을 번복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시작으로,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도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검찰 소환을 앞둔 것으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최측근 저격수들로 코너에 몰렸다. 특히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은 “국정원 특활비를 달러로 바꿔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하는 등 검찰에 적극적으로 협조, 수사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는 활약상(?)을 펼쳤다. 물론 각자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살아있는 권력에 편승하며, 절대적 충성심을 보여 온 충신들의 저격수 변신에 대다수 국민들은 통쾌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만, 충신들의 고해성사가 그들의 죗값까지 씻어줄 수는 없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동료애로 떳떳한 한발을 쏜 전장의 저격수와 달리,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한발을 적중했기 때문이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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