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직업’ 선택 자유 있고, ‘직원’ 선택 자유 없다

檢 민간기업 채용 수사 적절한가
‘다툼 여지’ 法 기각의견 귀담아야
‘우리 일 아니다’란 목소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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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몸담은 사람이다. 그것도 장(長)이다. 앉자마자 심각하게 입을 연다. “의견을 듣고 싶다. 솔직하게 말해 달라.” 금융권의 채용 비리 수사다. 솔직한 여론을 듣고 싶다고 한다. 한 명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한다. “채용 비리로 실망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 구속시켜야 한다.” 다른 한 명은 수사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한다. “우리은행이 민간기업 아닌가. 누구를 뽑든 말든 자유다. 검찰권이 개입할 일은 아니다.”

요사이 많이 오가는 고민이다. 이 고민이 현실에서도 꼬였다. 우리은행 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됐다. 은행장과 임원이 풀려났다. 판사의 기각 사유는 이랬다.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고, 진술이 확보돼 구속할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 특히 주목할 구절이 있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 혐의가 진실이라도 유죄를 단정할 수 없을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장’의 고민도 거기에 있었다. 담당 검사도 고민했을까. 재청구는 없었다.

비리 행태가 가관이다. 1차 꼴등이 최종 합격하기도 했다. 청탁 받은 응시자 명부까지 만들어졌다. 30명이 그렇게 합격했다. 2015~2017년만 봤는데 이 정도다. 화가 치미는 일이다. 판사도 당연히 그 기록을 다 봤을 거다. 그런데 기각했다. 그 취지가 짐작된다. 우리은행은 민간기업이다. 직원 채용은 민간 경영의 영역이다. 국가 형벌권의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아마도 판사가 ‘다툼의 여지’라 적어 돌려보낸 영장의 뜻일 게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은 다르다. 공기업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또는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다. 당연히 경영의 모든 행위가 법률의 지배를 받는다. 인력 채용도 마찬가지다. 법으로 규정된 절차, 방식, 자격이 있다. 적법과 위법의 경계가 조문(條文)으로 명백히 획정돼 있다. 이걸 어기는 순간 곧바로 위법이 된다. ‘공기업 채용 비리 4천788건’이란 통계도 거기서 나왔다. 공고 규정 어겨서 걸렸고, 면접 규정 어겨서 걸렸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민간기업이다. 채용기준을 강제할 공적 근거가 없다. 그걸 처벌하겠다며 검찰이 뛰어들어간 것이다. ‘업무방해죄’라는 포괄적인 죄명을 앞세우며 들어간 것이다. 서류 압수하고, 직원 소환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그러자 판사가 막아섰다. ‘죄가 되는지 살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랬으면 쉬면서 검토해 보는 게 통상의 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되레 민간은행 다섯 곳을 추가하며 판을 키웠다.

억울했는지 하나은행이 이런 해명을 내놨다. “점포가 있는 대학의 출신자에 대해 경영적 판단을 고려했다.” 민간기업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 천수백억원의 등록금은 큰 시장이다. 입점에 사활이 걸려 있다. 마침, 대학은 학생 취업률에 목매고 있다. 이해가 맞았을법하다. 그렇게 가점(加點) 채용이 이뤄진 모양이다. 물론 불공정 채용이다. 고쳐야 할 적폐다. 그렇다고 경영진을 교도소에 넣을 일은 또 아니다. 그런 적도 없다.

작금의 흐름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빽’은 있다. 여론전(戰)이다. 젊은이들의 분노가 무기다. 탄착점(彈着點)에 민간 은행을 매달아 놨다. 검찰 수사를 신호탄으로 다수의 난사(亂射)가 시작됐다. ‘민간 기업이니 신중하라’는 판사 의견 따윈 무시된다. ‘경영적 판단을 이해해달라’는 회사 해명도 묵살된다. 오로지 하나만 묻는다. ‘특별 채용이 좋은지 나쁜지 답하라.’ 당연히 ‘나쁘다’가 답이다. 그러면 주문한다. ‘무조건 구속시켜라.’

정작 권한을 쥔 기관은 금감원이다. 그런데 모든 걸 넘기고 빠졌다. 검찰이 그걸 덥석 받았다. 그러더니 밀기 시작했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가리지 않는다. 수사권원이 있건 없건 가리지 않는다. 무섭다. 검사 1천명의 생각이 다 이렇지는 않을 텐데…. 민간기업임을 고민하는 검사도 있을 텐데…. 하나가 된 듯 밀어붙인다. 그 기세에 나라가 이상해졌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있고, ‘직원 선택의 자유’는 없는 나라처럼 됐다.

그날, ‘장’은 자기 말을 많이 했다. “선배에게 물었다. 우리 땐 인사 청탁이 ‘정’ 아니었냐고 했다. 적폐인 것은 맞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업무 방해를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지도 모르겠고.” 이런저런 고민을 말했다. 30분쯤 하더니 밝아졌다. ‘자, 얘기 그만하고 쏘주나 마십시다.’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어차피 그도 맡겨지면 수사하는 검사다. 검사 누구라도 “우리가 수사하기 적절치 않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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