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황혼 알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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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구 근처에서 전단지 돌리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 한 장씩을 건넨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 받아가는 사람, 받아서 바로 버리는 사람 등 반응이 제각각이다. 지하철 역사내 쓰레기통엔 전단지가 수북이 버려져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추운 날엔 웅크린 사람들이 전단지를 외면하기 일쑤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알바)는 한때 10대의 전유물이었다. 알바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전단지 배포였다. 최근엔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졌다.

 

50대 이상 ‘황혼 알바’가 5년 동안 7배 증가하는 등 빠르게 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50대 이상 고령자가 1월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새로 등록한 이력서 수는 2014년 768건에서 2017년 5천403건으로 603% 늘었다. 전체 신규 이력서 중 50대 황혼 알바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지만 다른 연령층보다 증가세가 뚜렷하다.

 

알바몬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희망 근무기간이 길어진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전체 이력서 중 1년 이상 장기 알바를 희망하는 이력서 비중은 13.2%다. 이 중 50대 이상에선 1년 이상 근무 희망 비중이 3배 수준인 45%로 나타났다. 10대나 20대 비율은 각각 2.8%, 9.2%에 그쳤다.

 

50대 이상 알바 구직 분포가 가장 높은 직종은 공인중개사(12.5%)로 나타났다. 성별로 살펴보면 50대 이상 남성은 운전ㆍ대리운전(8.4%), 화물ㆍ중장비ㆍ특수차(8%), 주차관리ㆍ주차도우미(5.5%), 배달(5.4%), 공인중개사(4.9%) 순이다. 50대 이상 여성은 가구ㆍ침구ㆍ생활소품(7.8%), 공인중개사(7.6%), 텔레마케팅ㆍ아웃바운드(7.3%), 고객상담ㆍ인바운드(6.2%), 베이비시터ㆍ가사도우미(5.5%) 순이다.

 

알바가 부수입 마련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다른 연령층과 달리 50대 이상 장년층에선 은퇴 후 일정한 소득을 기대하는 생계유지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황혼 알바생 이력서에선 ‘꾸준히,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알바를 찾는 경향이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노후 생활고를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상 2016’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48.8%로 OECD 평균(12.1%)의 4배가 넘는다. 

황혼 알바의 증가는 오래 사는 데 따르는 ‘리스크’가 원인이다. 50대 초에 은퇴해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보니 알바를 찾아나서는 것인데 시니어들의 알바 전쟁,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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