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더치페이

네덜란드는 ‘더치페이(Dutch pay)’의 나라다. 교수와 학생이 밥을 먹을 때도 자연스럽게 따로 계산한다. 음식값이 비싼 것도 이유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이유다. 지나치게 타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서로 부담을 안 주니 오히려 편안하게 느낀다. 

네덜란드는 개인의 자립심이나 남녀 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다. 18세 이상이면 대개 집에서 독립하는데, 부모 집에 얹혀 살 경우 임대비용을 지불한다. 데이트 할 때도 남자가 모든 비용을 내거나 더 내는 경우는 드물다. 남자가 돈을 더 내면 ‘내가 뭐가 부족해 얻어 먹어야 하나’라며 여성이 자존심 상해한다.

 

일본도 ‘뿜빠이(分配)’라고 하는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땐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부부, 친구, 가족 사이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일본인들은 밥이나 술을 얻어먹으면 빚지는 것 같아 불편해한다.

 

중국에는 ‘AA제(制)’라는 게 있다. 대수 평균(Algebraic Average)이라는 영어단어를 줄인 말이다. ‘AA제 생활’이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 정도로 중국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더치페이의 한국식 표현은 ‘각자 내기’다. 우리 문화는 함께 식사를 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사는 게 관례였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한 사람이 비용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 많이 바뀌어 젊은층에겐 더치페이가 더 익숙하다. 데이트 비용도 나눠내고, 친구나 직장 모임에서도 1n 하는 경우가 많다.

 

2030세대는 더치페이를 ‘N빵’이라 부른다. N빵은 딱 떨어지지 않는 몇백원의 금액도 정확하게 나눈다. ‘토스’와 ‘카카오페이 송금’ 같은 간편 계좌이체 앱을 비롯한 핀테크 기술이 2030세대의 더치페이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동계올림픽 특수를 맞은 평창·강릉의 식당들이 외국인들의 더치페이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식당에서 거의 각자 계산한다. 술과 음식을 테이블이 아닌, 손님별로 주문하고 계산하다 보니 외국인 단체손님이 20명이면 20번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다.

 

편의점에서도 여러 명이 단체로 와서 각자가 든 물건만 계산한다. 1천~2천원의 소액도 예외가 없다. 동전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계산할 때도 있어 손님이 몰리는 시간엔 계산대 앞에 5~6m까지 줄을 서는 모습도 연출된다. 더치페이는 세계인들에게 체면과 관계없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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