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이선생 14세 후손 이재정씨, 화석정(花石亭) 제대로 복원해야 합니다

▲ 율곡이이 맏형인 이선의 17대손 이재정2

“1966년 복원된 화석정(花石亭)은 어릴 적 놀던 화석정의 모습과 전혀 다릅니다. 제대로 복원해야 합니다.”

 

조선 중기 대유학자 겸 경세가였던 율곡이이 선생(1536~1584)의 학문연구소였던 화석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ㆍ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소재)에 대해 사진으로 확인되고 있는 1920년대 모습으로라도 재현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그 중심에는 율곡이이 선생 14세손인 이재정씨(76ㆍ파주시 황골로)가 있다.

 

이씨는 요즘 율곡이이 선생 15대 종손인 이천용씨(75)와 덕수 이씨 찬성공파 종회 이칠용 회장(83) 등과 함께 율곡이이 유적 바로잡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52년 전인 1966년 5월 7일 신윤창 전 국회의원과 파주유지, 유림 등이 주축이 되어 성금을 모아 복원된 화석정(당시 대한뉴스에는 율곡사당 낙성식이라고 표현)이 학문연구소 아닌 누정(누각과 정자) 형태로 엉터리 복원됐다며 이를 바로잡고 율곡이이 선생 생가를 복원하는 것이 활동의 핵심이다.

 

파주시가 파주군이었을 때 파평면 부면장을 지내는 등 30여 년 공직에 몸담았던 이씨가 기억하는 어릴 적 화석정 모습은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씨는 “9살 땐가 율곡리 동네 형 등과 뒷동산에 올라갔다. 

화석정이 있는 주위에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뤘고 화석정 내부는 8평 규모에 사방으로 문이 달렸었으며 구석진 곳 2평 정도에 구들(온돌)이 있었고 바깥에는 굴뚝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현재 화석정 주위에는 전나무 등은 인근 임진 부대 창설 때 다 베어지고 밤나무로 대체됐다. 문 없이 동서남북으로 트여 화석정이 풍류정자(누정)로 인식돼 율곡이이 선생의 후학양성을 위한 학문 강론과 시작 활동 모습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기의 문신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로 1443년(세종 25)에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했고 1478년(성종 9)에 이숙함(李淑?)이 화석정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돼 율곡이이 선생 증손에 의해 1673년 복원된 후 1950년 6ㆍ25전쟁 때까지 재차 소실되기까지 화석정은 277년간 존속했다.

 

이씨가 기억하는 화석정 모습은 음주가무를 즐기고 경치를 감상하는 유흥상경이 아닌 후학양성을 위한 학문연구소였으며, 이는 조선왕조실록(영조 16년) 등 10여 개 문헌에 나타나 있다. 1920~30년대 사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씨는 “1950년 6ㆍ25전쟁 이후 16년 만에 다시 복원된 화석정이 왜 본래 모습대로 재현하지 않았는지 그때 군에 있어 알 수는 없었다. 제대 후 고향에서 권위정부의 밀어붙이기 정책의 소산이었다고 들었다”며 “다행히 파주시가 화석정종합정비기본계획을 만들었는데 본격화될 때 화석정이 본래 모습대로 복원되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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