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1. 프롤로그

백성 위한 문화유산… 경기도 정체성을 만나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수원 화성 화홍문, 남한산성행궁, 김포 덕포진, 무학대사 부도
(왼쪽부터 시계방향) 수원 화성 화홍문, 남한산성행궁, 김포 덕포진, 무학대사 부도
천년의 경기, 경기의 천년!

 

천년을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천년을 지속한다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역사의 장구함이야 어찌 필설로 이야기하겠느냐만 하나의 지역이 하나의 몸체로, 이름으로 천년을 간 것이 세계 역사에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이 바로 경기(京畿)이고, 경기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고, 경기의 문화가 곧 우리의 문화인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경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경기는 왜 경기였는가? 경기를 경기로 만든 그 힘은 무엇이고, 그 발현은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그 발현의 상징이 바로 우리와 호흡을 같이하고 우리의 감정과 이성이 담겨진 문화유산이다.

 

그렇다면 경기도 문화유산의 특질은 무엇일까? 경기도의 역사가 다른 지역의 역사와 다르듯이 경기도의 문화유산은 다른 지역과 분명한 차별성을 가진 문화유산일 것이다.

너무도 잘 알려졌듯이 경기도는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해 우리 역사발전의 중추가 됐던 곳이다. 우리나라 역사는 곧 경기도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할 만큼 경기도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핵심이었다.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기도는 문화를 태동시키고 전파했다. 경기지역을 확보하는 것이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인물이 새로운 사상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 시대의 인물들은 사상과 문화를 알려주는 조형물을 만들게 됐고 그것은 훗날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경기도 문화유산의 특질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다. 다만 경기도의 역사적 환경으로 인하여 ‘가장 오래된’ 혹은 ‘가장 아름다운’ 혹은 ‘가장 웅장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수준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경기도가 한반도 역사에서 어떤 지리적 위치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가! 한반도의 젖줄이라 불리는 한강과 임진강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강으로 자리잡고 있기에 이 강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가 창조되었다.

 

강은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선사시대 이래 사람들은 어로와 채취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강 없이는 생존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에 강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인간과 강이 서로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탄강의 연천 전곡리와 한강의 미사리, 여주 흔암리에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된 것은 강과 인간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전곡리 선사유적은 단순히 한탄강을 끼고 있는 너른 들판이 아니다. 이곳은 민족의 시원을 알려주는 곳이며, 한반도의 역사가 세계 그 어떤 민족의 역사보다 앞선다는 것은 보여주는 상징이다. 구석기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과 국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이 자신들의 일천한 역사를 과대포장하기 위해 신석기와 구석기 유적을 조작해 역사의 시대를 끌어 올리려 한 사실은 구석기 유적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전곡리 선사유적에서 나온 ‘아슐리안형석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발달된 구석기 유적의 전형으로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적 생명력을 알려주는 것이다.

 

경기도는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많은 성곽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이곳이 전략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곳이었기에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하여 성곽을 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서 강과 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성곽을 쌓아 한반도 전체 백성을 지켜주기 위해서이다.

 

한번 보자! 강에 성곽이 있는 곳이 한강과 임진강 말고 한반도에 그 어디에 있는가? 경기도를 차지하는 세력이 곧 한반도의 주인이 된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였다. 백제가 경기도에서 건국하여 위대한 문명을 만들었고, 고구려가 남하하여 이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만주 일대를 차지하여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신라는 경기도를 차지함으로써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속에서 경기도 일대는 한강과 임진강에 끊임없이 연결되는 성을 쌓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강안성(江岸城)’이 만들어졌다. 임진강의 호로고루, 은대리성, 당포성 등과 한강의 구리 아차산성, 여주 파사성은 강안성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강안성과 달리 경기도의 산성은 외세와의 항전으로 백성의 피와 눈물이 가득했던 곳이다.

 

고양의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한곳이다. 고니시유키나와, 가토 키요마사, 구로다의 장수가 지휘하는 일본 최고의 정예 연합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은 지휘관이었던 권율의 탁월한 공로도 인정할 수 있지만 백성의 단결과 죽음을 무릅쓴 항전이 없었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이는 다시 말해 행주산성은 곧 백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백성의 사랑 속에 유지되었기에 백성의 힘으로 그 성을 지켰던 것이다. 백성은 자신의 성을 지켰지만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킨 것이다. 그래서 행주산성은 곧 조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한산성은 성곽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한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도시이다.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성곽인 남한산성은 우리 나라 성곽 중에서 가장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산성이 ‘청야입보(淸野入堡)’라는 전술적 원칙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남한산성은 성곽도시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 때문에 2014년에 세계문화유산을 등재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성곽들 속에서 성곽의 모든 장점들을 모아 최고의 성곽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이 바로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華城)’이다. 유네스코가 강조하듯 화성은 18세기 동서양 군사건축물의 모범이자 너무도 아름다운 성이다. 그러나 단순히 화성을 건축학 범주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화성은 개혁군주 정조의 꿈과 희망이 담긴 위민(爲民)을 위한 실학의 터전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결국 경기도의 성곽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성곽이니 그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경기도는 사상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중심이었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 성리학의 중심이었다. 잘 알려졌듯이 고려시대는 불교를 장려하여 후삼국 전쟁을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국가를 안정시키려 했으므로 주로 불교 유적이 만들어졌다. 수도 개경에는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었다. 더불어 경기 지역에는 국가와 백성을 위한 대규모 기도사찰이 만들어졌는데 안성시 죽산의 봉업사와 여주의 고달사, 양주의 회암사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특히 고려말에 여주의 신륵사는 중국의 새로운 수행 방법은 간화선을 공부한 나옹 혜근이 수도한 가장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다.

 

이 사찰들은 모두 최고 혹은 최대라는 표현을 써도 전혀 위축이 되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은 흔히 경주 황룡사지, 익산 미륵사지가 가장 큰 절터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봉업사, 회암사, 고달사의 절터는 우리나라 그 어느 절터보다 크다. 아니 큰 것만이 아니라 아직도 푸르른 광채가 빛나는 문화유산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달사지는 역사상 가장 큰 석불대좌와 부도가 존재한다. 큰 것만이 아니라 너무도 빛이 나서 눈을 뜰 수가 없다. 불국사 다보탑을 보며 돌을 밀가루 반죽다루듯 하였다고 하지만 고달사에 남아있는 작품들을 보면 1천여 년 전의 그이들의 손놀림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기도 문화유산의 특질이다.

 

더불어 경기도는 조선 성리학의 본향이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그들의 학업을 계승하기 위한 서원들이 만들어졌다. 파주 자운서원, 하남 석실서원, 용인 충렬서원, 심곡서원 등은 조선시대 유림 종장(宗匠)들이 거처하던 유림(儒林)의 심장이었다. 이와 같은 성리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실학이 태동되었고, 경기도는 실학과 연계된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다. 다른 그 어떤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실학유산은 우리 경기도만의 보배인 것이다.

 

경기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조선왕릉’이다.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은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자연의 지세를 존중하는 자연지세적 조영술을 따랐다. 중국의 황제릉과 같이 인위적 조성에 의한 딱딱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이지 들인지 왕릉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는 그만큼 조선의 왕실이 백성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체 44기의 조선왕릉 중 대부분이 경기도에 있는 것은 바로 경기도의 지기(志氣)와 산세(山勢)가 극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왕릉을 산책만 하여도 깊은 사색과 성찰을 얻을 수 있다.

 

결국 경기도의 문화유산은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역사의 중심에 늘 경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민족적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문화유산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보다 선진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우수성도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더욱 경기도의 문화유산이 가치가 있는 것은 백성을 위하고 그들을 지켜야한다는 정신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도의 문화유산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 천년 경기, 경기의 천년 시대를 맞아 남북의 화해와 협력, 민족의 새로운 미래의 중심에 서게 될 경기도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1년 여간 경기지역 최고의 문화유산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통해 다시 경기의 정체성을 찾을 것이다. 이는 바로 미래의 경기 천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산 홍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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