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모든 걸 (안) 내려놓겠다’

2017년 7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했다. 이른바 ‘문준용 의혹 조작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여기서 그가 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 언뜻 ‘정계 은퇴’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안 대표가 내려놓은 것은 없었다. 2018년 2월. 그가 또 한 번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던진 승부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특별히 내려놓는 건 이번에도 없을 듯하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평범한 단어다. 그런 만큼 최초의 화자(話者)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정치인들이 즐겨 쓴다는 건 분명하다. 어디 안 전 대표뿐이겠나. 많은 정치인들이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산다.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시기다. 정치적 위기 때 등장한다. 다른 하나는 결과다. 나중에 보면 던진 게 없다. 정치인들의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말은 그래서 이렇게 정리된다. ‘일단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겠다. 그런 연후에 재기를 노리겠다.’ ▶사람들은 정치를 욕한다. 그러면서도 정치를 흉내 낸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말이 지금 그렇다. 배우 조재현의 성추행 논란이 충격을 줬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아빠 이미지가 컸던 그다. 그래서 충격이 크다. 출연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영화제 집행위원과 교수직도 사퇴한다고 했다. 논란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잘못 살아온 죄인이다…모든 걸 내려놓겠다”. ▶멋있게 보였나. ‘미 투 범죄자’들의 유행어가 됐다. 배우 최일화씨도 성폭력 논란에 휘말렸다. 사과를 했는데 똑같은 말을 했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배우 한명구씨도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었다. 교수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역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말을 했다. 어떤 네티즌이 댓글을 남겼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이제 그만..지겨워요..너도나도 다 내려놓은 다네..”(jisu****). ▶2007년 신정아 사건이 연예계로 번졌다. 방송인ㆍ연예인들의 허위 학력이 무더기로 들통났다. 흡사 지금의 ‘미투 광풍’과도 같았다. 많은 유명인이 사과하며 은퇴를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남았다. 여전히 라디오 진행하고, 주연 배우하고, 개그계 대부고, 연극계 대모다. 독자(讀者)가 문자를 보냈다. “(학력 위조 때 떠난다던 사람들) 다 복귀했지요?” 지금의 성추행 책임자들도 결국 돌아올 것이라는 단언이다. 그렇다. ‘모든 걸 내려놓겠습니다’엔 숨겨진 말이 따로 있다. ‘모든 걸 안 내려놓겠습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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