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3일. 북한 평양 순안 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자 김정일 위원장이 아래까지 나와 영접했다. 두 정상은 두 손을 포개 잡고 한참 동안 인사말을 나눴다. 이 순간 북한의 환영 인파는 양손에 든 꽃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김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 대통령의 방북에 따른 남북정상회담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회담에 대한 기대도 대단했다. 두 정상은 두 차례의 회담을 통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8ㆍ15 광복 이후 남북 최고 지도자가 합의, 발표한 최초의 선언이다. 회담 결과로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상봉했다. 당시 나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던 남북 이산가족 간 상봉 현장에 있었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국 언론들도 희망에 부풀어 남북 교착 상태가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10월2일. 평양 4ㆍ25문화회관앞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다.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재확인했고 한국전쟁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와 남북 육로 재개방에 대해 동의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DJ 대북정책을 기꺼이 이어갔다.
김ㆍ노 대통령의 두 차례 방북으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화해를 가져오지 못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통 큰 협력을 약속했지만 대한민국에 돌아온 것은 핵무기였다. 북한은 2006년 첫 번째 핵실험을 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연거푸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결국 남북정상들의 회담에서 얻어진 합의는 이행을 위한 실제적인 내용이나 보장 없이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남북 화해를 위한 역대 대통령들의 노력은 북한에 대한 불신과 환멸, 남북 관계의 악화만을 가져왔다.
국민을 열광케 한 17일간의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정신에 동떨어진 정치적 잡음도 있었지만 김여정, 김영철의 방남으로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한다. 북미대화를 중재하는 문 대통령의 의지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는 대화는 의미가 없다.
김창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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