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정치인 출판기념회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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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경기지역에서도 여러 건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2일 이필운 안양시장의 ‘안양 누리기’ 출판기념회엔 2천500여 명이 참석, 현직 시장의 세를 당당히 과시했다. 3월3일은 날이 좋아서일까, 더 많은 행사가 열렸다. 재선에 도전하는 정찬민 용인시장의 ‘수퍼맨 정찬민’ 출판기념회가 강남대에서 열렸고, 김성제 의왕시장의 ‘김성제, 희망을 꽃 피우다’ 출판기념회가 계원예술대에서 개최됐다. 다시 화성시장에 도전하는 최영근 전 화성시장의 ‘최영근 레시피’ 출판기념회도 같은 날 협성대에서 열렸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6·13 지방선거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출판기념회가 봇물이다. 광역ㆍ기초단체장, 교육감 출마 예정자들이 너도나도 열고 있다. 오는 14일까지 전국에서 하루가 멀다고 열린다.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까지는 횟수와 관계없이 열 수 있어 이때가 절정이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문자로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초대장에 짜증이 난다는 사람들도 많다. 초대장이 무슨 세금 고지서를 받는 느낌이란다.

 

선거에 나서는 출마 예정자가 자신의 인생 역정과 행정 비전, 가치관이 담긴 책으로 유권자와 소통하려는 걸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 정치인의 책이 큼지막한 표지 얼굴 사진만 돋보일 뿐 제대로 된 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직접 쓴 건지 의문이 드는 것은 물론 허술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책들을 내놓고 버젓이 출판기념회를 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세 과시를 할 수 있고, 인지도도 높일 수 있고, 또 하나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 개인 후원금은 정치자금법 규제를 받지만, 책값 명목의 축하금품은 기부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입 내용 자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행사에 보내는 화환만 10만원 제한이 있을 뿐 책값은 기준 자체가 없어 한권에 보통 1만5천~2만원 하는 책을 얼마 주고 사는지 깜깜이다. 책값 명목으로 출마 예정자들에게 돈 봉투가 전달되지만, 얼마가 들어있으며 누가 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충전용’이란 비판이 거센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 수수를 제한하는 별도 입법과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금 청구서’나 다름없는 초대장을 받아들고 마지못해 눈도장을 찍으며, 현금 봉투로 ‘보험’ 드는 이들이 많은 정치판, 정상은 아니다. 이런게 바로 민폐요 적폐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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