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과로사회’란 오명을 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가장 오랜 시간을 근무하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2천113시간으로 35개 OECD 회원국 평균(1천766시간)보다 20% 가까이 많다. 과로사로 사망하는 사람도 한해 300명이 넘는다.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근로시간이 크게 줄면서 과로국가란 오명에서 벗어나고, ‘저녁이 있는 삶’과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줄어든 근로시간 보충을 위해 기업 신규 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선 한숨을 내쉰다. 주 16시간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파격적 개정안이 기업들에게 너무 버겁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우리 노동시장에 연착륙시키기 위해선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이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근로시간이 짧지만, 근로시간 상한을 단체협약 등을 통해 노사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을 기준으로 하되 노사에 재량권을 줘 사업장마다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독일은 1일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은 규정돼 있지 않다. 연장 근로의 한도도 노사 합의에 따른 단체협약에 맡기고 있다. 독일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의 시간을 자신의 계좌에 저축해 뒀다가 휴가나 휴식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제도다. 8시간 일하기로 한 직원이 하루 10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은 저축된다. ‘마이너스 통장’도 가능하다. 미리 휴가를 쓰고 나중에 초과근무를 해도 된다.
프랑스는 근로시간이 짧기로 유명하다. 노동법상 1주 35시간, 연간 1천607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 다만 연장근로는 산별, 기업별 협약으로 정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많다. 노사 협약에 따라 하루 1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식이다.
미국은 더 자유로워 최장 근무시간 제한이 없다. 1주일에 40시간이라는 법정 근로시간만 있고, 이를 넘기는 근무는 시간외수당만 주면 된다. 일부 사무직에겐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사무직 근로시간 규제 제외업종)’이라는 제도도 운용한다. 고소득자라 법이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과로사회에서 벗어나려면 근로시간 단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대신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도 탄력근로제, 근로시간저축제 도입 등 근무 형태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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