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글을 모르셨다. 찬송가로 배우신 게 전부다. 가족에만 해독되는 암호였다. 편지를 대필해 드리는 것도 아들의 일이었다. 1987년 겨울 어느 날. 일병 아들에게 편지가 왔다. 누이 편지 속에 반쯤 찢어진 공책 한 장이 있었다. 펴보곤 깜짝 놀랐다. 엄마 글씨였다. 연필로 직접 쓰셨다. 남이 볼까 봐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32년이나 흘렀다. 이제 편지는 사라졌고 내용도 잊혀졌다. 그래도 두 문장은 남아있다. ‘글 모르는 엄마가 챙피하지’와 ‘건강히 와라’. ▶술ㆍ담배를 어지간히 싫어하셨다.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고 하셨다. 술 먹은 아들은 집 주위를 한참 뛰어야 했다. 빨래에서 발견된 담배꽁초 때문에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역시 1987년 일이다. 가족이 아들 부대로 면회왔다. 음식만 한 보따리였다. 한참을 먹고서야 허리를 폈다. 엄마가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면회소 뒤편으로 갔다. 고쟁이 속에서 손수건 뭉치를 건네주시고 들어가셨다. 며칠이나 갖고 계셨던 걸까. 꼬깃꼬깃해진 ‘솔’ 담배 두 갑이었다. ▶아들이 제대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며칠 뒤다. 문산에서 서울역, 서울역에서 수원역, 수원역에서 집까지 왔다. 문을 두드렸다. 알루미늄 쪽문이 열렸다. ‘우리 ○○가 왔구나.’ 엄마가 쓰러지듯 주저앉으셨다. 아들은 눈을 의심했다. 엄마 머리가 백발이었다. 새치는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군 생활 27개월, 아들은 견딜만했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의 손 편지는 아들에게 없다. 엄마의 백발을 볼 수 없게 된 지도 오래다. ▶군(軍) 인권을 말한다.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인다고 한다. 외출 외박 때 지역 제한도 없앤다고 한다. 근무가 끝나면 휴대전화도 쓸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군 인권의 주어는 늘 ‘군인’이다. ‘군인의 가족’은 말하지 않는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걱정하는 ‘엄마’ 편에서 생각하는 인권은 없다. 복무 기간 줄이고, 외출 외박 제한 풀고, 휴대전화 쓰게 한다고 ‘엄마’의 걱정이 사라질까.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 ▶그 아들의 아들이 군에 갔다. 구타 없어지고, 식사 푸짐하고, 통화 가능한 군대다. 그래도 ‘군대 좋아졌다’는 말은 못한다. 여전히 힘들다. 그때 울지 않은 후회를 안고 사는 아버지라면 더 그 맘을 안다. 외출 나온 아들의 전화다. “동기들과 삼겹살을 먹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돈을 내주셨어. 8만원이나 되는데. 철원에서 근무하는 아들 생각이 나서 내주신 거래.” 군인권과 군기강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앞으로 32년이 지나도 답은 없을 것이다. 군인이 그런거고 군 가족이 그런거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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