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前 대통령들의 사과

“정말 송구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내 혼자서 모든 책임을 다 안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각오입니다.” 1995년 11월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사 앞에서 한 얘기다. 수감을 위해 교도소로 떠나는 자리였다. 기업에서 수천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당시로서는 첫 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이었다. 외신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일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온 말은 시인과 사과였다.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19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택 골목에서 밝힌 소감이다. 그 유명한 ‘골목 성명’이다. 보름여 전, 노 전 대통령과는 많이 달랐다. 현 정권과 맞붙겠다는 결기가 확연했다. 하지만, 내용을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범죄 시인이었다. ‘끝난 사건을 왜 다시 하느냐’는 투정이었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기자단 앞에 섰다. 뇌물 등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는 길이었다. 진보의 더 없는 가치였던 노 전 대통령이었다. 재임 내내 정치 부패와 전쟁을 치른 그였다. “노무현”을 연호하는 노란색 물결이 여전히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사과했다. ‘면목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국정 농단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었다. 도로변에 태극기가 나부꼈다.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연호도 이어졌다. 얼마 전까지 ‘(특검이 나의 혐의를) 엮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던 그다. 하지만, 그 역시 검찰청에 들어서면서는 ‘송구스럽다’며 사과했다.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는 이제 사건일 뿐이다. 여전히 1면 머리에는 오르지만 과거와 같은 흥분이 없다. 헬기까지 띄우던 취재 열기도 사라졌다. 지켜보는 국민의 관심도 많이 시들해졌다. 새삼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되레 짜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 짜증 속에는 ‘실망’이 섞여 있다. 왜 하나같이 검찰청에만 가면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느냐는 것이다. ‘결백하다’며 배짱부리는 대통령이 왜 없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오늘 또는 내일 새벽 결정된다. 이미 검찰 조사에 앞서 소감을 밝혔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혹여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수감에 앞선 마지막 말을 할 것이다. 어떤 말을 할까. 역시 ‘죄를 인정한다’며 사과할까. 사과하는 전 대통령들의 ‘검찰 발언’에 신물이 난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큰소리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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