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수도권은 고농도 미세먼지가 자욱한 짙은 잿빛이었다. 24, 25일 전국을 뒤덮었던 초미세먼지로 휴일 내내 ‘셀프 감금’을 당했던 시민들은 26일에도 시커먼 미세먼지에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출근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미세먼지보다 입자가 더 작아 건강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초미세먼지 농도는 25일 경기도가 ㎥당 118㎍을 기록하는 등 평소의 3배를 넘었다. 2015년 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농도였다. 26일엔 고농도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더해져 일부 지역에선 한 치 앞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했다. 뿌연 창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답답함이 엄습했다. 회색빛 공포다.
경기도는 이날 수도권 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됨에 따라 간선급행버스 16개 노선 185대에 1회용 미세먼지 마스크 1만8천매를 긴급 배포했다. 물론 공짜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전날 16시간 동안 미세먼지 평균농도가 모두 ‘나쁨’ 수준(50㎍㎥ 초과)이고, 다음 날에도 ‘나쁨’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돼 발령됐다. 도는 올해 22억원의 예산을 추가 확보해 미세먼지 마스크 375만매를 도내 시내ㆍ시외버스 1만2천500대에 비치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해 도민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 중이다. 28일 마감을 앞두고 80여 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그 중엔 ‘곳곳에 나무를 심자’는 제안이 많았고, ‘중국과 같이 높이 100m의 초대형 공기청정기를 곳곳에 설치하자’ ‘드론으로 서해안 하늘에 물을 뿌려 먼지를 제거하자’ ‘높은 빌딩이나 교량에 분무 시설을 설치해 미세먼지를 제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모든 차량의 2부제 운행을 강제 시행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접수된 내용은 현재 시행 중인 대책과 비슷한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도민 관심은 더 커졌을 것이다.
날로 심각성을 더해 가는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 해결책 없이 길에 물을 뿌리고 마스크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선 외출을 안하던가, 마스크를 쓰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니 속 터지는 대책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선 노약자는 외출을 하지 말고 집안에 처박혀 있으라는 식이다.
이젠 미세먼지가 재앙 수준이 돼 마스크가 아닌 방독면이라도 써야 할 판이다. 마스크 쓰라고 강조하기 전에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숨 쉴 권리를 달라’는 국민들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실천·지속 가능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처방으로 미세먼지에 빼앗긴 봄을 되찾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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