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난리가 났다. 산수유ㆍ매화에 이어 개나리ㆍ진달래ㆍ벚꽃이 빵, 빵, 터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극성이지만 꽃축제를 찾는 인파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봄꽃 중엔 동백도 있다. 동백하면 제주가 떠오른다. 올해는 유난히 더 그렇다. 슬픈 동백, 핏빛 동백이다. 꽃잎 하나 시들지 않은 절정의 순간에 모가지째 툭,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은 아프고 시리다. 처연하게 꽃 모가지를 떨구며 지는 모습은 비극적 죽음을 연상시킨다. 제주 출신 강요배 화백은 4·3 당시 희생당한 이들을 선홍빛 동백꽃으로 그려냈다.
제주4·3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해방 직후 이념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주도 전체가 국가의 부당한 폭력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붉은 동백꽃이 4·3의 상징 꽃이 된데는 이런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제주도가 동백꽃 배지 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가슴에 핀 동백꽃은 4ㆍ3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이자 4·3의 아픔을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승화시키자는 4·3유족과 제주도민의 마음이 담겨있다.
제주4ㆍ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와 기념사업회는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제주4ㆍ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온전히 자리잡지 못한 현실을 드러내는 역설적 표현이다. 4·3은 ‘제주만의 역사’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1948년 4월, 제주 전체 인구의 10%가량인 3만명 정도가 희생된 ‘제주4ㆍ3’이 일어났다. 해방정국 혼란기 속 국가 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참극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수십 년간 제주도민에게 4·3에 대한 침묵을 강요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울음마저 죄가 됐다. 진실은 왜곡·은폐됐다. 80년대 군사독재 시절까지만 해도 4·3에는 ‘빨갱이 폭동’이란 딱지가 붙었다.
금기시되던 4·3을 세상에 알린 건, 1978년 발표된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이다. 북촌리 집단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4·3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현기영 작가는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캠페인 구호에 대해 “제주4·3이 제주만의 역사가 아니기에 분단과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4ㆍ3은 온갖 질곡 속에서도 한 걸음씩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나아가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제주 4ㆍ3평화기념관 입구엔 아무것도 새기지 못한 ‘백비(白碑)’가 그대로 놓여있다. 한때 폭동으로 일컫던 4ㆍ3이 사건인지, 항쟁인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는 그 백비에 뭐라고 새길 것인가?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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