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41세 여성이 4살 짜리 딸과 함께 숨진 지 4개월여 만에 발견됐다. 경찰은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12월 수도 사용량이 ‘0’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넉 달 전쯤 정씨 모녀가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파트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와 수도요금ㆍ전기료 체납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의 죽음은 관리비가 수개월째 연체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사무소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현장에 남겨진 정씨의 유서에는 “남편이 숨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혼자 살기 너무 어렵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씨의 남편은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 후 친정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숨질 당시 빚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정씨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었다. 아파트의 이웃 주민들은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대화를 한 적은 없다” “아파트 주민과 왕래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웃들은 “서로 알고만 지냈어도 이렇게까지 늦게 발견되지 않았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정씨 모녀 사망 사건은 2014년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여러모로 닮았다. 당시 서울 송파구의 지하에서 살던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 끝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현금 70만원을 넣은 봉투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가 복지 시스템을 점검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정씨 모녀 사건은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 받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하루하루 어렵사리 살아가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은 아직도 취약하다.
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2월23일 ‘송파 세 모녀 4주기 추모제’를 열어 이런 점을 꼬집은 바 있다. 이 단체는 “복지 대상자 선정 기준이 까다로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송파 세 모녀의 죽음으로부터 4년이 지나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복지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증평 모녀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이 더 이상 없도록 좀 더 촘촘하고 세심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관리비나 수도요금ㆍ전기료가 몇개월 밀리면 주민센터에 알리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죽음을 맞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번 사건도 행정과 이웃의 관심이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상태의 비극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