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의 문자다. ‘점심을 ○○○(호텔)에서 먹는데, 다른 방에서 남경필 지사와 이언주 의원이 나와. 선거 앞두고 합종연횡? 하여튼 맘 편히 밥 먹을 데가 없네.’ 날짜는 식목일 4월5일이고, 수원의 유명 호텔 중식당이다. 남 지사는 자유한국당 후보, 이 의원은 바른미래당 예비 후보다. 두 정당의 연합은 이번 선거 최대 관심사다. 하필 이런 때 두 경쟁자가 식당에서 목격됐다. ‘아는 형님’ 눈에도 기삿거리로 보인 모양이다. ▶정치인의 밥 한 끼라는 게 그렇다. 매력 있는 취재 거리다. 비공개 밥 자리라면 더 그렇다. “왜 먹었느냐” “무슨 얘기를 했느냐”며 질문이 따라붙는다. 돌아올 답변은 대개 싱겁다. “잘 아는 사이에 밥 한 끼 했다”거나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고 한다. 곧이곧대로 믿을 정치 기자들이 아니다. 대화를 추측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정치인의 밥 자리는 그만큼 ‘사건’의 출발인 경우가 많다. 구상에서 실행으로 옮겨가는 획기적 전환점일 수 있다. ▶아예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밥상’도 있다. 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초청했다. 유승민 원내 대표 축출로 서먹할 때였다. 찻잔과 물컵만 덩그러니 놓였다. 여당 대표에게 내놓기엔 초라한 접대였다. 1년 뒤, 이번에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초청했다. 서민은 구경도 못할 코스 요리가 차려졌다. 송로버섯, 케비어, 바닷가재, 샥스핀…. 두 대표가 받은 밥상의 차이가 곧 기사(記事)였다. 박 대통령은 속내를 그렇게 밥상으로 표시 냈다. ▶‘합종연횡’ ‘한국당 남경필 후보와 바른미래당 이언주 예비 후보의 단일화 논의’. 비공개 밥 자리를 보고 내린 ‘아는 형님’의 해석이다. 신문 좀 읽는 시민이라면 다 그렇게 봤을 거다. 그런데 정작 둘의 대화를 확인할 길은 없다. 남 지사든, 이 의원이든 속 시원히 답해 줄 리 없다. ‘단순한 만남’ ‘오래된 약속’…. 그것도 아니면 ‘노 코멘트’(말할 수 없다)…. 이게 밥 자리 취재의 한계다. ▶6개월 전 쓴 글이 있다. ‘남경필式 판짜기 정치’(2017년 10월 25일자 김종구 칼럼)다. ‘남경필은 사전에 선거판을 잘 만든다’ ‘한국당 후보판도 만들어가고 있다’. 당시는 홍준표 대표가 ‘절대로 南은 안 받는다’라며 이를 갈 때다. 그 후 6개월, 실제로 남 지사는 후보가 됐다. 우연일지 몰라도 맞았다. 그 논리라면 남 지사는 또 다른 판을 만들고 있지 않겠나. 아마도 그 판은 범(凡) 보수 단일화일 것이라. 성미 급한 인간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 마감 바쁜 기자는 ‘자장면 점심’ 보고 ‘단일화 논의’라고 쓴다.
김종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