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간부 공무원이 자리를 옮겼다. 대입 개편안을 담당하던 실무 국장이다. 새로운 보직은 지방 대학 사무국장이다. 정기 인사철도 아닌데 이뤄진 발령이다. 누가 보더라도 좌천이다. 언론이 문책성 인사로 규정했다. 대입 개편안 혼란의 책임을 물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장관의 책임을 밑에 떠넘겼다’는 비난도 섞었다. 그러자 교육부가 해명하고 나섰다. “당사자가 건강 문제로 인사이동을 요청했다”고 했다. 정말 ‘건강상 이유’일까. ▶2012년 12월, 이런 일이 있었다. 검찰 고위직 몇 명이 갑자기 자리를 옮겼다. 대검 기조실장이던 정인창 검사장이 대구고검 차장으로, 대검 박계현 대변인이 서울남부지검 형사 2부장으로 발령났다. 잘 나가던 대검 간부들의 난데없는 좌천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항명 사건’에 대한 조치였다. 정 검사장 등이 검찰총장에게 ‘들이받았던’ 사건이다. 법무부가 출입 기자들에 설명했다. “정 검사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전출을 희망했다.” 정말 그랬을까. ▶얼마 뒤 통화했다. 짐작했지만 물었다. “어디가 많이 아프냐.” 웃으며 답했다. “아픈 데 없다.” 다시 물었다. “아파서 자청했다던데.” 더 익살스럽게 웃었다. “시골에 온 것도 억울한데, 이제 병자까지 됐다. 미치겠다.” 엄밀히 문책성 인사는 아니었다. 애초 항명이라 볼 수 없었던 일이다. 현장 검사들의 목소리를 총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총장의 입장이 우습게 됐다. 그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 대가로 정 검사장은 ‘병명도 없는 환자’가 된 것이다. ▶비슷한 용도로 ‘일신상의 이유’란 말이 있다. 의외의 인사 때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 ‘건강상의 이유’보다 범위가 넓다. 그만큼 해석의 여지도 많다. ‘여자 문제’ ‘금전 문제’ ‘송사 문제’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해석의 폭을 확 줄인 게 ‘건강상의 이유’다. ‘아프다’는 어감에서 오는 동정론도 있다. 그래서인지 자주 쓰인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아프지 않다’고 하니 그게 문제다. ▶교육부의 혼란은 이번만이 아니다. 유치원의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 때는 4, 5일에 한 번씩 입장을 바꿨다. 장관이 ‘수능 절대 평가 도입 필요성’이란 말을 했느니 안 했느니 논란도 있었다. 전(前)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수사 의뢰도 대상을 잘못 선정하는 소동도 벌였다. 공직사회의 ‘책임 의식’은 더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책임이 특정 계급에만 강요된다면 그건 잘못이다. 정부 부처 국장급이 언제부터 책임 전문 직책이었나. ‘위’를 보호하려고 멀쩡한 공무원들을 ‘환자’로 만드는 거짓말도 적폐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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