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警, 잘못 시작한 브리핑이 불신 자초했다

‘의례적’ ‘대부분’, 무혐의 때 쓸 표현
브리핑 이후 언론·여론·정치 惡化
‘수사권 조정 계산說’ 사실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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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적’이라고 했다. 서울경찰청장이 한 말이다. ‘드루킹 사건’을 브리핑 하면서다. 김경수 의원의 답장을 그렇게 규정했다. 둘의 관계는 국민적 관심의 핵심이다. 동지적 관계였다면 대형 사건이다. 일방적 관계였다면 개인의 일탈이다. 그 가늠의 일단이 메시지 성격이다. 청장이 여기에 가치판단을 내린 것이다. ‘의례적’의 뜻이 뭔가. ‘형식이나 격식만을 갖춘’이다. ‘김 의원이 형식적 답변만 했다’는 뜻이다. ‘공모 안 했다’로 들린다.

그러면서 정작 밝힐 건 안 밝혔다. 김 의원이 읽은 메시지가 있다. 경찰도 확인한 모양이다. 그 숫자를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읽지 않았다’고만 했다. ‘대부분’의 뜻은 또 뭔가. ‘절반이 훨씬 넘어 전체량에 거의 가까운 정도’다. ‘거의 전부’를 읽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전날 김 의원 표현을 그대로 닮았다. 전체 확인이 안 끝났다면 ‘대부분’이라 쓸 수 없는 것이고, ‘대부분’이라고 쓸 수 있다면 전체 확인이 끝난 걸 텐데….

언론 취재의 대상도 언급했다. 기자가 김 의원 조사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 막았다. 그러면서 “수사의 핵심은 매크로프로그램으로 여론을 조작했는지 여부”라고 했다. ‘김 의원 수사는 핵심이 아니다’란 설명이다. 국민은 궁금해한다. 수사를 해야 김 의원도 좋다. 그걸 물은 것이다. 그런데 취재 대상을 정정하듯 설명했다. ‘김 의원 공모 사건’으로 보지 말라로 들린다. ‘드루킹 댓글 사건’으로만 보라로 들린다.

사건기자를 해봤다. 사건 브리핑만 10여 년 쫓아다녔다. 선혈 낭자한 현장 브리핑도 있었다. 정치 사건의 브리핑도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지 않았다. 청장 스스로 수사 초기라고 말했다. 그러면 돌려 답하면 됐다. ‘수사 중 답변 불가’라고 하면 끝이었다. 사건기자들이 싫어하는 답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유용하게 쓰이는 ‘브리핑 기술’이다. 그런데 청장은 그날 그러지 않았다. 대놓고 ‘죄 없다’ ‘수사 대상 아니다’라 했다.

여론이란 걸 어찌 봤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뒤집혔다. 경찰 비난이 시작됐다. ‘한 달 동안 휴대폰 분석도 안 했다’, ‘김 의원 접촉 메시지를 검찰에 안 보냈다’, ‘민주당원 확인하고도 숨겼다’…. 야권도 성토하고 나섰다. 첫날은 한국당만 경찰청을 찾았다. 브리핑 이후엔 바른미래당도 몰려갔다. 브리핑에서 항의거리를 얻은 모양이다. 인터넷의 변화는 더 극명하다. ‘TV 조선 억지’에서 ‘권력형 사건’으로 넘어갔다. 다 브리핑 이후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김 의원과 청와대 타격이 제일 크다. 김 의원은 신뢰를 잃었다. 청와대는 새로운 표적이 됐다. 민정수석실은 지금 난타전 중이다. 대통령 턱밑까지 갔다. 깔끔한 결말은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 ‘김경수 무혐의 통보서’를 쓸지도 모르는데, 이게 꼬였다. ‘김 의원 답장은 의례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써야 하는데, 이걸 미리 말했다. ‘드루킹의 메시지를 읽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써야 하는데 이것도 미리 말해 버렸다.

이런 결과표를 내놓으면 다들 뭐라 하겠나. ‘그럴 줄 알았다’고 하지 않겠나.

차라리 청장 개인의 공명심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수사권 조정 얘기가 나온다. 브리핑 이후 언론이 그렇게 평한다. 한겨레 신문은 ‘警, 청와대 눈치 보나’라고 썼다. 문화일보는 ‘수사권 조정 앞두고 靑 눈치 보나’라고 썼다. 안 그래도 권력에 기우는 게 수사기관이다. 정도만 달랐지 기울기는 늘 있었다. 여기에 집단 이익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얘긴데, 걱정이다. 아닐 것이라 믿기로 하자.

그래서 더 궁금하다. 서울청장이 입신양면의 ‘수’로 쓰려 한 것일까. 경찰이 수사권 조정의 ‘패’로 쓰려 한 것일까. 속을 모르니 뭐라 할 순 없다. 대신 그날 이후 현실만은 말할 수 있다. 잘못된 브리핑 피해가 경찰조직으로 갔다. 국민 의혹에 불을 그어댔고, 경찰 불신에 단서를 남겼다. 명쾌히 가야 할 사건에 시효 없는 정치 수명이 주입됐다.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시달릴 불공정 시비만 남았다. 이게 바로 16일 브리핑이 뿌린 ‘불복’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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