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반타작 ‘쌀 생산조정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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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남아 돌아 문제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은 2000년 이후 19년째 과잉 상태다. 쌀 생산량은 1998년 510만t에서 지난해 397만t으로 22.2% 줄었으나, 같은 기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37.7% 줄었다. 2000년 이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 쌀 의무수입량 40만9천t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매년 30만t의 쌀이 남아돌 판이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쌀값은 진작에 폭락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틀어막아 왔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자 식량 안보의 핵심이라는 이유에서다. 1990년대 말 자유무역으로 대부분 농산물의 수입 장벽이 헐렸으나 쌀만은 513%(2015년 이후 기준)의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다. 농가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각종 보조금을 주고,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과잉 공급량을 직접 사들여 비축하고 있다. 정부 재고량은 매년 늘어 올 2월 말 기준 230만t이 됐다.

 

문제는 정부 부담이 매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쌀 생산과잉 속 가격이 급락하면 농업인은 생계 보장을 위해 거리로 나서고, 정부는 세금으로 농업계 손실을 막아주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벼 농가를 보호하고 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들인 예산은 직불금(1조4천900억원)과 쌀 매입(7천677억원), 공공비축(2천532억원) 등 2조5천억원을 넘는다.

 

정부가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고육책으로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쌀 생산조정제는 벼농사를 콩 옥수수 등 다른 작물 농사로 전환하면 정부가 보조금(㏊당 평균 340만원)을 주는 제도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총 1천708억원의 재원을 투입했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농가 참여가 저조한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 1월 말부터 쌀 생산조정제 신청 농가를 접수한 결과 지난 20일 마감까지의 신청 면적은 목표했던 5만㏊의 65%인 3만2천500㏊에 그쳤다. 농가들이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쌀값이 크게 올라 다른 작물로 전환을 꺼리기 때문이다.

 

쌀은 남아도는데 쌀값은 오르니 기현상이다. 농가들에선 벼농사가 밭농사보다 익숙하고 편하다. 쌀이 과잉생산되거나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가 ‘보호’를 해주는데 골치 아프게 다른 작물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쌀농사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에도 5만㏊ 규모의 쌀 생산을 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올해 결과를 보면 내년 역시 만만치 않다. 정부가 실패를 자초한 쌀 생산조정제는 이래저래 성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쌀 생산 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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