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침묵하지 않을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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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강하게 키우려고’

수영을 좋아하지만 늘 4등에 머무는 준호를 때리며 코치가 말한다. 2015년에 상영한 영화 ‘4등’은 교육을 위해 매를 정당화하는 코치와, 체벌을 해서라도 1등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엄마의 비뚤어진 모정을 고발한다.

 

훈육차원의 체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체벌은 21세기인 요즘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해지는 체벌이라도 폭력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현행 헌법에서도 선언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아동도 예외일 수 없다. 부모의 친권과 양육권이 아동의 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자명하다.

 

둘째, 흔히 ‘사랑의 매’라고 정당화하며 가해지는 체벌은 은연중 아이들에게 ‘목적만 정당하다면 때로는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심어주며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매를 맞고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폭력을 정당화하며, ‘합당한 목적’만 있으면 언제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셋째, 체벌은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데다가 아이의 정신 상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2013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연구팀에서 아동학대 피해 아동과 피해를 당하지 않은 아동의 대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학대 아동의 대뇌는 전두엽과 해마 영역 간 연결이 손상되어 장기적으로 불안과 공포감 조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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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친권과 양육권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체벌을 국가가 제한할 수 있는가?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저)에서는 ‘정상가족’이라는 가족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를 과보호 혹은 방임하거나 소유물로 대하면서 아동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스웨덴에서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던 가정의 영역 내라도 국가가 적극 개입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가정 내 아동 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2000년 ‘아동복지법’을 전면 개정, 국가의 개입 근거를 마련하였고, 경찰은 2016년 전국에 학대전담경찰관(APO)을 발족하고 유관기관과 함께 아동학대의 예방과 수사 연계, 사후관리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을 가정 내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면 단순히 법체계 및 기관들의 역할 외에도 ‘온 마을의 눈과 입’이 필요하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와 신고 유도를 위해 지난 1월부터 ‘우리아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이유이다.

 

아픈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침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미래사회의 주역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한 영화의 대사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도,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면 말이다.

 

윤성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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