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낙태죄 폐지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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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를 규정한 헌법조항을 폐지키로 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놓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66.4%, 반대표가 33.6% 나왔다.

 

유권자들은 낙태금지를 엄격하게 규정한 1983년 수정 헌법 제8조의 폐지 여부를 놓고 투표했다. 이 조항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존권을 부여하고 있다. 낙태를 할 경우 최대 14년형이 선고된다. 아일랜드는 낙태 완전 금지에서 벗어나 1983년 임신부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했다. 원치않는 임신을 한 임신부들은 영국 등에서 ‘원정 낙태’를 해왔다. 낙태에 찬성 입장인 레오 바라드카르 총리는 투표결과에 대해,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로 아일랜드는 임신 12주 이내의 경우 본인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대부분의 유럽국가에 동참하게 된다. 아이슬란드는 임신 16주까지, 스웨덴은 18주까지, 네덜란드는 22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반면 유럽국가 중 몰타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낙태죄 폐지 논란에 휩싸여있다. 여성가족부가 “여성의 기본권 중 건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여가부는 “헌법과 국제규약에 따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건강권은 기본권으로서 보장돼야 한다”며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이 규정하는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이러한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70조는 ‘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때문에 원치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음성적으로 시술을 받고 있다.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해 16만8천738건의 낙태가 이뤄졌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연간 109만 5천건으로 추정했다. 낙태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정확한 집계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형법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선진국은 임신중절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강간, 근친상간, 임산부의 생명·건강에 위협,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 낙태를 합법화하고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조치를 없애도록 요청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가 폐지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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