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법 땐 과감하고 통 큰 법관
사법 농단의 적폐 법관으로 몰려
본인 위해서도 검찰 조사받아야
1년이 흘렀다. 양 전 대법원장 얘기를 또 쓴다. 이번에는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다. 이미 두 번이나 사설로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볼 것 없는 졸고다. 하물며 1년 전 글이다.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있겠나. 더구나 이번 글과 비교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내가 안 좋다. 기억 속 1년 전 글이 자꾸 지금의 것과 뒤섞인다. 양 전 대법원장을 너무 추켜 세웠던 건가. 잘못된 정보로 써내려갔던 글인가. 내가 본 것은 그의 포장된 겉모습이었나.
지금, 양 전 대법원장은 아주 질 나쁜 법관이 돼 있다. 정권과 거래를 위해 판결을 이용한 대법원장이다. 생각이 다른 판사들을 옥죄고 탄압한 대법원장이다. 판사의 재산 관계까지 뒷조사를 하던 대법원장이다. 다른 데도 아니고 법원 내부에서 나온 비난이다. 1년여 전까지 그를 수장으로 모시던 판사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대 이런 대법원장은 없었다. 퇴임 1년 만에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이렇게 참담하게 짓이겨진 대법원장은 없었다.
결국, 그게 큰 죄로 이어졌다. 신뢰 붕괴다. 재판 거래의 증거들이 지목됐다.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통합진보당 사건 등 20여 건이다. 당사자들이 대법원으로 몰려갔다. ‘양승태 사법부’를 통째로 부정했다. 지켜보던 국민도 싸늘해졌다. 재판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10명 중 6~7명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다 ‘양승태 의혹’이 뿌려 놓은 죄다.
법원도 고민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강경 목소리 위주였다.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대개 소장파 판사들이 주장했다. 그러다가 간부급 판사들의 신중론이 나왔다. 검찰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그렇다고 판결이 수사받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잔인한 언론은 이미 선정적 제목을 만들어냈다. ‘양승태,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나’.
그런데 그 섭섭한 언론 제목에 답이 있다. 양승태 의혹은 고민의 시기를 넘었다. 사법부는 분열돼 갈등이 크다. 앞선 6년의 재판은 재판이 아닌 걸로 됐다. 국민 다수는 사법부 신뢰를 철회했다. 이걸 어떻게 수사 없이 덮겠다는 것인가. ‘재판 거래가 있었지만 덮고 가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재판 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할 것인가. 법원이 하는 그런 발표를 어떤 국민이 믿겠나. 수사로 발표하는 것 외 답이 없다.
엊그제, 양 대법원장이 자택 앞에 섰다. 기자들에게 말했다.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하물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는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특정 성향 법관에게 인사 등 어떤 불이익도 준 적 없다”…. 그러면서 “(사실이 아님은)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부족할 정도다”라고도 했다.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부인이다. 그런데 믿어주는 이가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그에게도 수사밖에 없다.
그 시절, 수원고법은 도민의 숙원이었다. 삭발도 했고, 서명도 했다. 하지만, 씨도 안 먹혔다. 다들 대법원이 막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 체증이 뚫린 게 2013년 3월21일 오후다. ‘기재부 땅을 고법 부지로 검토한 게 맞다’는 대법원 발표가 전환점이었다. 공교롭게 그 통화를 하던 게 나였다. 내 기억 속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랬다. 과감하고, 솔직하고, 통이 큰 법관이었다. 그 ‘양 대법원장’이 5년 뒤, 전혀 다른 ‘양 전 대법원장’으로 나타나 있다.
잘 안다. 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은 쉽지 않다. 수사를 촉구하는 이 주장도 흔적 없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말해야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반드시 검찰에 나와야 하고, 검찰 입을 통해 재판 거래의 진위가 발표돼야 한다’. 참담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이 이거다. 의혹을 주장하는 판사들을 위한 것이고, 사법부 신뢰 추락을 우려하는 판사들을 위한 것이다. 갈데없이 망가져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위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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