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핵가방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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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국 정상들은 해외 순방이나 지방 시찰 때 핵무기 발사용 위성통신 장비가 담긴 ‘핵(核)가방’을 가져간다. 유사시 핵무기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10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핵가방을 지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방한 때도 해군 장교가 검은색 핵 가방을 들고 다니는 장면이 목격됐다.

 

핵가방은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0년대에 만든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이 원조다. 구체적인 사용법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무게 20㎏의 서류가방인 핵가방은 미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 이동할 때, 군사보좌관의 손에 들려 항상 따라다닌다.

 

영화처럼 핵가방에 발사 버튼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북으로 알려진 핵공격 옵션 책자와 대통령 진위 식별카드, 행동지침, 핵 공격명령을 전파할 수 있는 소형 통신장치 등이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핵공격 명령 인증코드가 담긴 비스킷으로 불리는 보안카드도 있다. 잘못된 발사명령을 막기 위해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도 비스킷을 소지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명이 추가로 동의해야 유효한 공격명령이 된다. CNN은 “핵 공격에 대한 반격은 15분이면 충분하며, 대통령이 발사를 명령하는 순간부터 첫 번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사일로를 벗어나는 데는 대략 4분이 걸린다”고 전했다.

 

핵가방은 러시아에도 있다. 러시아 핵가방은 ‘체게트(Cheget)’라 불리는데 1983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때 만들어졌다. 핵가방은 핵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 간의 ‘공포의 핵균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단이다. ‘우리에게 핵무기가 있으니 우리를 핵 공격하면 우리도 핵무기로 공격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북한에도 핵가방이 있을까? 있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싱가포르에 핵가방을 가져갔을까? 관심사지만 알려진 바는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 했지만 핵가방의 존재 여부는 모른다. 지난 3월과 5월 방중 때도 김 위원장 수행원 중에 핵가방으로 짐작될 만한 가방을 든 인물은 포착되지 않았다. 설사 핵가방이 있다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만나는 자리인 만큼 핵가방을 들고 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오늘 ‘세기의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역사적 회담이다. ‘완전한 비핵화’ 합의가 이뤄져 한반도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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