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영어로 ‘히스토리(History)’다. 근래까지의 역사는 남성의 입장에서 남성의 경험을 기록해 왔다. 때문에 전통적 역사 기록이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고 편파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세기 후반 ‘허스토리(Herstory)’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허스토리는 여성에 의해 쓰여진 역사로, 여성 입장에서 여성이 인간 역사에 기여하고 참여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는 남자만의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또 하나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화 ‘허스토리’가 다음주 27일 개봉된다. ‘허스토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의 이야기(herstory)’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남성들의 사관인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써 내려간 역사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지나가는 역사가 아닌, 뜨거운 용기로 역사를 만들어낸 위안부할머니와 그들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연대와 공감이 진정성 있게 그려졌다.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낮은 목소리2’(1997), ‘숨결-낮은 목소리3’(1999),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7), ‘그리고 싶은 것’(2013), ‘마지막 위안부’(2014), ‘소리굽쇠’(2014), ‘눈길’(2015), ‘귀향’(2016),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2017).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끝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한 영화들이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일본 시모노세키(下關ㆍ하관)와 부산(부)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투쟁(일명 ‘관부재판’)을 벌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이들의 승소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10인의 원고단과 13인의 변호인이 6년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23번의 재판을 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지만, 잘 알려지진 않았다. 작품은 실화의 묵직한 힘과 관록의 여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력을 무기로 관객에게 뜨거운 울림과 위로를 전할 것이다.
영화는 위안부의 처절한 삶을 재연하진 않았다. 법정 증언대에 앉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증거가 없다”고 발뺌하는 일본 정부 앞에 할머니들은 흉터투성이인 맨몸을 드러내며 “내가 곧 증거이자 증인”이라 말한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싸움을 이어간다. 그런 그녀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목소리, 그녀들의 몸짓이 바로 ‘역사’다. 잊지 말아야 할,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herstory)’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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