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선비들에게는 ‘귀씻이(洗耳ㆍ세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귀를 씻는다’라는 뜻으로 심한 욕설이나 악담, 음담패설, 불길한 말, 부정하고 부도덕한 말을 들으면 귀가 더럽혀졌다 해서 곧바로 물로 귀를 씻었다. 오염된 말이 마음에 와닿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귀씻이의 유래다. 영화 ‘사도’를 보면 귀씻이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조선 21대 왕 영조는 귀에 거슬리거나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물로 귀를 씻었다. 특히 사도세자와 극한 대립각을 보일 땐 과할 정도로 ‘귀씻이’를 했다.
▶‘눈씻이(洗目ㆍ세목)’, ‘입씻이(洗口ㆍ세구)’라는 풍습도 있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부도덕한 행위를 보았거나, 입에 담아서 안 될 말을 했으면 집에 돌아와 오염된 눈과 입을 씻었다. 황해남도 봉천군 봉암리에는 ‘눈씻이바위’가 있다고 전해온다. 서당이 있던 시절, 아이가 험한 말을 하면 훈장이 샘가에 데려가서 세 차례 양치질을 시켜 더러운 입을 씻어내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귀를 씻고, 눈을 씻고, 입을 씻으며 맑고 깨끗하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시대엔 너무 많은 비난과 욕같은 험하고 더러운 말들이 난무하고 일상화 됐다. 특히 지난 6.13지방선거에서는 악담과 비방, 폭로 등이 도를 넘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상대후보 헐뜯기로 일관하면서 정책선거, 공약대결은 실종된 채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이 판을 쳤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유난했다. ‘욕설 음성파일’, ‘여배우 스캔들’, ‘땅투기 의혹’ 등이 선거 이슈를 독점하며 선거판은 진흙탕이 됐고, 유권자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겼다.
▶그렇잖아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정치인들이 희망은커녕 절망과 혐오만 안겨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래도 또 혹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귀 씻고 눈 씻고 입 씻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민과 지역을 잘 보살피기를 기대해 본다.
명나라 시대 관청에 ‘세이대(洗耳臺)’가 있어 관원들은 반드시 여기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세속의 더러움을 깨끗이 없애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백성을 돌보는 일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귀씻이ㆍ눈씻이ㆍ입씻이는 결국 마음을 씻는 일이다. 이는 지도자의 기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당선자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용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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