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 개혁 안 되는 진짜 이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나 ‘규제개혁 프로세스 개선방안’을 전달했다. 그 자리에서 박 회장은 “회장으로 4년 반을 일하며 38차례 규제개선 건의를 했지만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 등 건의사항 9건을 담은 ‘혁신성장 규제 개혁과제’를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이제 이런 건의도 지겨울 정도다. 그래도 경제단체들이 다시 꺼내든 이유는 최근 김 부총리가 3개월이라는 기한까지 정해가며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은 우리나라의 해묵은 과제다. 정부는 이미 20년 전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 규제개혁위원회를 설립해 기존 규제는 재검토하고 신설 규제는 사전심사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 간소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역대 대통령마다 ‘규제 전봇대를 뽑는다’, ‘손톱 밑 가시를 뽑는다’, ‘규제 암 덩어리’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무원들을 독려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월 22일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혁신성장을 위해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낙제이다. 아무리 대통령 의지가 강한들 이익집단의 반발, 사회적·이념적 갈등,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등으로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규제개혁이 안 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이해당사자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은 쏙 뺐다. 그러면서 규제 개혁은 사회보상체계 변화와 관련돼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어렵다는 얘기다.

역대 5명의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외쳤건만 안 되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규제개혁을 할 수 있는지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 차량공유업체 우버는 택시업자의 반발로, 원격의료는 의료계 일부의 반발로,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 때문에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해관계자와 관련법이 실타래처럼 엉켜있고 또 공무원들의 소극적 업무태도도 한 몫 단단히 한다.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 1천여 건 중 690여 건이 규제 법안이다. 경총 보고서에 따르면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의료 허용 등 의료 분야의 규제만 풀려도 최대 37만 4천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규제의 30% 이상은 법규개정 없이 공무원의 적극적 법규해석만 가지고도 가능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결국 규제개혁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은 지방권력까지 장악한 힘센 정권이다. 총선 전까지 밀어붙일 동력이 충분하다. 꼭 없애야 할 규제라면 소위 피해 본다는 기득권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상을 주고서라도 함께 논의해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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